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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단체 인터뷰 시리즈] 당신의 삶, 당신의 일 : 강호진 집행위원장2023.09.25

캡처

 

입주단체 인터뷰 시리즈 [당신의 삶, 당신의 일] 마지막 시간.

그 주인공사단법인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강호진 집행위원장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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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제주 출신이지만 4·3이 뭔지 전혀 모르고 놀기만 하던 천둥벌거숭이로 자랐어요. 친인척 중에 4·3 관련된 분들이 계시지만, 직접적인 4·3 유족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다 대학을 갔는데 4월 3일에 열린 시위를 유심히 살펴보니 4·3이라는 일이 일어났다는 거예요. 제주라는 섬에서 당시 인구 10명 중 한 사람이 죽었다니 엄청나게 충격적인 일이잖아요. 그 이후부터 4·3에 대한 관심을 계속해서 가지게 됐죠." 강호진 집행위원장의 인터뷰 중

 

제주에서 가장 어렵고 아픈 일을 꼽는다면 바로 4·3이 아닐까요. 제주가 가진 큰 아픔이기에 감히 꺼내기 어려울 정도로 조심스럽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그럴수록 4·3에 대한 이야기를 더욱 크게 말해야 한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단법인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의 강호진 집행위원장이 그 주인공입니다. 그는 어려운 일을 어렵게만 볼수록 더욱 해결할 수 없다며, 긍정적이고 즐거운 마음으로 임해야만 꽁꽁 얽힌 문제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4·3처럼 해결이 멀게만 느껴지는 일 역시 그렇다고요.

 


 

STEP 1. 아무것도 모르던 천둥벌거숭이, 4·3을 알게 되다

 

대학에 가서 처음 4·3에 대해 알게 되며 큰 충격을 받은 호진씨는 대학 시절 내내 4·3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했습니다. 토론회나 집회, 시위에 참여하기도 하고 전국 대학교에 4·3과 관련된 영상을 100개씩 보내기도 했죠. 졸업 후 신문사에 취직한 그는 4·3 유적지를 취재하는 일을 맡으면서 더욱 4·3에 깊게 관련이 되었고요. 어쩌면 그와 4·3의 인연이 쉽게 끝나지 않으리란 걸 예고했던 걸지도 모릅니다.

 

“4·3 유적지 취재를 끝내고 나니까, 이제 그만 할 때도 됐다고 생각은 했어요. 그런데 제가 시민단체에서도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대표가 되어버린 거죠. 제주지역의 시민단체니까 당연히 4월 3일은 중요한 날일 수 밖에 없었고요. 그렇게 이어진 4·3과 관련된 활동이 지금까지 이르게 됐고, 현재는 사단법인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를 통해 4·3이 지닌 과제들을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중이죠.”

 

4·3이 일어난 지 70년이 지났음에도, 과제들이 계속해서 남아있어 그만두지 못하고 있다는 호진씨는 여전히 풀지 못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중입니다.

 


 

STEP 2. 감옥보다 힘들었던 4·3 특별법 개정을 통해 이뤄낸 일들

 

“사실 감옥에 갔던 건 힘들지 않았어요. 오히려, 4·3 특별법이 개정되었을 때가 가장 힘들었죠. 이 개정의 핵심을 요약하면 '4·3 당시 돌아가신 분들에 대해 국가가 책임을 인정하고 보상금을 지급한다' 라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나오는 단어인 ‘보상’과 ‘배상’은 정말 다른 단어거든요. 배상은 국가가 불법적인 행위를 해서 받는 것인데 보상은 그게 아니거든요. 굉장히 예민한 부분이라서 사회적으로 '배상'이라는 단어를 획득하지 못했을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4·3에서 가장 의미있는 일이라는 평가를 받는 특별법 개정을 이뤄내기 위해 노력한 호진씨임에도, 그는 4·3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더 크다고 말합니다. 국가가 잘못을 인정하고, 희생자와 유족에게 사과를 전하고 보상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그 억울함이 모두 해소가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특별법 개정 이후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4·3의 수많은 과제들을 하나씩 풀어가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을 지속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STEP 3. 4·3은 결코 제주만의 문제가 아니므로

 

 

활동사진

△(사)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국·내외 다양한 활동 모습 (일부)
 

호진씨는 4·3이 이념 차이로 인해 제주도민들이 서로 싸운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당시 정치와 세계적인 흐름에서 일어난 알력다툼의 일환이라고요. 그렇기에 제주 뿐만이 아니라 한국을 넘어 일본과 대만, 미국 등의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과 함께 하는 제주 4·3 국제 네트워크까지 만들기도 했습니다. 4·3과 함께, 4·3과 유사한 사건들이 가지는 세계적인 의미를 찾는 포럼을 열면서 큰 그림을 그려가고 있습니다.

 

“4·3을 벌써 몇 십년 째 붙들고 있는데 완전한 해결은 아직도 멀었죠. 하지만 그럼에도 긍정적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려고 노력합니다. 항상 하던 방식으로 4·3을 대하지 않고 다양한 접근을 하기도 하고, 좁은 지역과 한정된 사람들에게만 4·3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곳,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려고 노력하기도 하면서요.”

 

그렇기에 호진씨와 위원회는 2년 전부터 4·3과 관련된 우리나라의 다양한 장소들을 정리해 지도로 만드는 일을 꾸준히 해오고 있습니다. 이런 활동을 보고서와 영상을 통해 알리기도 하고요. 우리나라를 넘어 미국에서는 백악관에서 집회를 하기도 하고 제네바에서는 유엔 본사에 방문해 인권 관련 활동을 하기도 하는 등 앞으로도 제주를 넘어 범세계적으로 4·3을 알리기 위한 활동은 계속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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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e Step.

 

“저는 일종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지금처럼 제가 할 수 있는 4·3과 관련된 과제들을 하나씩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다양한 정보를 모아 아카이브를 해두는 일은 돌을 모으는 것과 같고요. 이렇게 모은 돌을 4·3과 유사한 일을 겪은 다른 이들, 그리고 4·3을 직접 겪지 않은 미래 세대에게 건네주기 위한 징검다리를 놓는 것에 쓰는 거죠.”

 

누구나 스스로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호진씨이기에, 기본적인 권리를 침해당한 이들을 위해 지금까지 계속해서 4·3에 관련된 이야기를 소리 높여 외치고 있습니다. 그의 외침은 비슷한 일을 겪은 이들에게 위로가 되기도 하고, 다음 세대에게는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는 일종의 알람이기도, 그리고 동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곰곰히 생각해볼 하나의 질문이기도 할 겁니다.

 

 

하단 썸네일

 

 

 

 

사업기획 및 총괄 : 기반조성팀 고하음

인터뷰글 : 정다운 에디터(@bloom.jej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