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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도남동 3편] 마음을 가꾸는 사람 _ 독거노인 돌보미 강정숙2020.10.15


독거노인|돌보미|돌봄



도남오거리 근처에 살고 있는 강정숙 씨는 스물 일곱 무렵 

뒤늦게 미용 기술을 배운 뒤, 약 20여 년간 도남동에서 미용사로 일했다.

그 과정에서 미용과 목욕 봉사를 하며 어르신들을 만났고, 새로운 일의 보람을 느꼈다. 

이제는 아들과 며느리를 대신해 손주 키우는 즐거움에 빠진 강정숙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배태랑 미용사에서 독거노인 돌보미로

강정숙 씨는 스물셋 제주 애월읍으로 내려와 아들 하나에 딸 셋을 낳고 농부 부인으로 살았다. 

그러다 스물일곱 즈음 친정에 가까운 도남오거리 쪽에 집을 마련해 살면서 늦게 미용 기술을 배웠다. 

당시에는 미용 면허증이 귀하고, 미용실도 한두 군데뿐이어서 장사가 잘됐다. 

그는 그 시절을 “의자는 네 개인데, 항상 다 차 있을 정도로”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고 회상했다. 

50살이 될 때까지 미용 일을 하면서도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꼭 어르신들을 위한 봉사를 해왔다. 

일을 완전히 그만두고서는 시 자원봉사센터에서 독거노인 돌보미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노인과 함께했던 나날

독거노인 돌보미는 전화로 그들의 안부를 확인하거나, 직접 찾아뵈어 말벗이 돼주는 역할을 한다. 

힘든 일도 많았지만, 돌보미들끼리 서로 응원하면서 꿋꿋이 해나갔다. 

서른 분을 모시는 와중에 몇몇 어른들의 임종을 지키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은 89세 어르신의 집을 방문했을 때였다.



어느 날 어르신이 누워 계신데 들어가 보니까 좋은 향수 냄새가 솔솔 나는 거예요. 

‘어, 우리 어르신이 향수 뿌릴 일은 없는데 무슨 좋은 냄새가 이렇게 나지?’ 하면서 

앉아 있는데 밥통에서 조금씩 김이 올라오더라고요. 

“삼춘, 밥 먹읍시다” 했더니 

“기여, 밥도 먹고 저기(밥통에) 떡 놨으니까 떡 먹어라” 그러셨어요.

제가 밥통을 열어보니 목욕탕에서 쓰는 때비누가 있었어요.

누가 삼촌한테 그걸 목욕비누로 쓰라고 준 거를, 밥솥 안에 떡인 줄 알고 놓은 거예요. 

그래서 아이고, 삼촌이랑 부둥켜 앉았지요.





 


제주 이야기 들려주는 할머니

9년 넘게 해오던 돌보미 일을 그만두고 이제는 손주를 보는 즐거움에 빠졌다는 강정숙 씨. 

코로나로 아이들과 계속 집에만 있어야 하는 일상이 힘들기는 하지만, 

며느리와 아들이 고마워하는 모습에 행복하게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그는 손주가 누구에 대한 원망보다는 “감사합니다, 다 덕분입니다”라고 말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또 다른 바람으로는 학교나 유치원에서 서울말이 아닌 제주말로 자장가와 책을 읽어주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손주들 다 크면 고운 글을 써보고 싶어요. 

그리고 학교 ‘방과후 교실’이나 유치원 같은데 가서 이야기해주는 할머니가 되고 싶습니다. 

”영희야, 학교 갔다 왔니?“ 하는 서울말이 아니라 

”영희야, 학교 갔다완?“ 이렇게 제주도 말로 들려주는 식으로. 

이제는 애기들을 더 보듬고, 같이 놀고 싶어요. 

애기들이랑 5~6년 지내다 보니까 이게 더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 기획_제주시 소통협력센터/메모리플랜트

· 인터뷰_장혜령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