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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행복을 맛보는 ‘우연한 식탁’2023.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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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음식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직접 요리하는 데서 얻는 기쁨도 클뿐더러 즐거운 대화까지 곁들여지면 지친 몸과 마음에 따스한 온기가 돈다. 제주의 제철 식재료로 살뜰하게 차린 ‘우연한 식탁’에 둘러앉은 이들의 얼굴이 환하게 빛나는 이유다. 

 

소셜다이닝 프로그램 ‘우연한 식탁’
로컬 식재료로 건강한 음식을 만들면서 스스로 돌보는 습관을 들이고, 함께 식사하는 즐거움을 나누면서 새로운 관계를 맺도록 돕는 소셜다이닝 프로그램이다. 청년 1인 가구와 유학생, 파견근무자 등 먹거리 기본권을 챙기지 못하는 주민을 위해 기획되었다. 10월부터 11월까지 2개월간 2개 그룹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우연한 식탁에서 만든 요리 레시피와 함께 나눈 이야기들은 추후 엽서 등 인쇄물로 제작해 배포할 예정이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제주시소통협력센터 5층에는 공유주방인 ‘모두의 식탁’이 있다. 지난 11월 8일, 오후 6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궁금한 마음에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10여 명의 참여자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속에서 요리할 채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한쪽에선 당근을 씻고, 맞은 편에선 키위 껍질을 벗기는 등 재료 손질로 분주한 가운데 칼질이 서투른 누군가는 휘핑크림을 만드느라 거품기를 세차게 휘젓었다.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깔깔거린다’는 속담이 생각날 정도로 별것 아닌 일에도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꽃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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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제철 식재료를 활용해 요리하는 재미를 배우고,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며 새로운 관계를 쌓아간다.

같이 요리하는 즐거움  

“오늘 요리할 채소들의 색깔이 너무 예뻐요. 이 작고 귀여운 당근은 어디에서 구하신 거예요?”

“제가 농사짓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농부님이 키운 거예요. 대부분 주황색 당근만 알고 계시죠? 원래는 자색이었는데, 네덜란드에서 품종을 개량하면서 만들어졌답니다.” 

코시랩(COSI lab)의 신정원 셰프가 이날의 식재료인 제주산 친환경 당근과 키위, 감자, 닭 등이 지닌 맛의 특장점을 친절하게 설명하면서 1부 강좌를 이끌었다. 그가 시범을 보이면 2인 1조로 팀을 꾸린 참가자들이 따라 하면서 하나씩 요리를 완성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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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의 메뉴는 제주밭작물과 통닭구이. 로컬푸드의 맛과 가치를 널리 알리고 있는 신정원 셰프가 1부를 진행했다. 


1인 가구를 위한 소셜다이닝  

이들이 처음 만난 것은 약 한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주시소통협력센터는 제주지역문제해결플랫폼 사무국과 함께 2023년 실행의제 중 하나인 ‘청년 1인 가구의 사회안전망 구축’의 일환으로 ‘우연한 식탁’을 기획하고, 참가자를 모집해 10월 4일부터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제주에서 혼자 사는 1인 가구 수는 매년 증가해 도내 전체 가구 비중의 33%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데, 혼자 살면서 바쁜 일상을 소화해야 하는 이들에게는 시간과 정성을 들여 요리하고 마주 앉은 누군가와 느긋하게 식사를 즐기며 대화는 일이 좀처럼 드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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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에 관심 있는 청년 1인 가구가 모여 소셜다이닝을 즐기며 좋은 이웃으로 관계를 발전시켜나갔다. 


식사시간의 또 다른 의미 

3회 연속 프로그램으로 운영된 만큼 참여자들 간의 관계도 한층 훈훈했다. 약 한 시간이 지났을 즈음, 오븐에서 껍질째 구워낸 통닭이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그 자태를 드러냈다. 

“엄청난 요리가 지금 눈앞에 놓여 있는데요, 식탁을 차리기까지 수고하신 여러분께 감사하다는 뜻으로 박수의 인사를 표하고 싶어요. 맛을 음미하면서 천천히 대화를 시작해볼까요?” 

음식이 완성된 뒤에는 사회학자 윤여일 교수가 바통을 이어받아 2부를 시작했다. 참여자 모두가 식탁에 둘러앉아 맛있고 건강한 식사를 즐기며 가벼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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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에서는 사회학자 윤여일 교수와 함께 둘러앉아 '먹는 것'과 관련한 나의 이야기를 풀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입맛을 돋우는 향신료처럼 톡톡  

단, 꼭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향신료를 가지고 음식의 풍미를 살리듯 우리가 일상생활 중에서 흔히 쓰지 않는 몇몇 단어를 활용해 먹는 것과 관련된 이야기를 주제로 할 것. 참여자들은 통닭 요리와 관련된 어린 추억을, 제주로 이주한 뒤 바뀐 식습관을, 여행지에서 맛본 잊지 못할 음식 관련 에피소드 등을 꺼내놓았다. 경청하는 가운데 스스럼없이 질문을 주고받기도 했다. 

모두가 음식에 관한 이야기였지만 그것은 동시에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우리의 삶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런 까닭에 영화나 드라마에 요리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 게 아닐까. 다가오는 주말에는 늦잠 자고 일어난 나를 위해, 그리고 누군가를 위해 멋진 식탁을 차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