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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질문도서관 아카이브 - 질문의 두께 2023.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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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지금 가는 길이 맞는지 의심이 들 때가 있다.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걸어온 발자취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때 적절한 ‘질문’은 큰 깨달음을 준다. 기획전 《질문도서관 아카이브–질문의 두께》를 통해 삶의 빈칸 하나가 채워졌다. 

 

자기를 탐구하고 표현하는 워크숍 ‘질문으로 떠드는 도서관’ 

평일 오후 6시가 넘은 시각인데도 불구하고 센터 1층에 구석진 자리에서 시민 10여 명이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두런두런 오가는 이야기 속에서 웃음꽃이 피었다. 뭐가 그리 재미있나 싶어 슬며시 앉아 귀동냥을 했다. 

“여기서 질문을 나누고 한 주를 보냈더니 좀 다른 경험을 하게 됐어요. 예를 들면 비 오는 날이 싫었는데 ‘왜 그럴까?’ 질문을 해봤어요. 그러다 우산 없이 걸어봤는데, 생각보다 괜찮더라고요. 친구들이랑 장난치던 어린 시절도 떠오르고, 비 오는 날도 괜찮다는 생각도 들고….” 

“친한 사람들과는 막상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껄끄러울 때가 있어요. 상대가 정색하고 ‘넌 왜 그런 생각을 하니?’라고 물어오면 좀 그렇잖아요.(웃음)”

다른 참석자들도 키득키득 웃으며 긍정의 고갯짓을 했다. 그러고는 지난 일주일 동안 자신에게 되물었던 질문을 하나둘 스스럼없이 말하기 시작했다. 모임의 정체가 대체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벽면에 걸린 포스터에는 떡하니 ‘질문으로 떠드는 도서관’이란 글자가 박혀 있었다. 이런 기획은 어떻게 시도된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따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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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들과 내 얘기를 어떻게, 얼마나 할 수 있을까? / 사회학자 윤여일 교수와 시민 10여 명이 함께한 흥미진진한 자기탐구 워크숍이 총 3회차로 마무리되었다. 

누구에게나 열린 커뮤니티를 지향하는 ‘질문도서관’ 

때는 바야흐로 2020년 5월이다. 제주시소통협력센터 1층은 온갖 질문들로 가득했다. ‘제주에서 발견한 52개의 질문’이라는 그 이름처럼 다양한 삶의 배경을 가진 제주 사람 52명의 인터뷰 내용을 통해 발견된 질문들을 영상, 음성, 카드의 형태로 담겼다. ‘나는 왜 일을 계속하는가’, ‘나이 들면 원래 이런 거였어?’ 관람객들은 질문 사이를 산책하듯 거닐며 누군가의 질문에 공감하고, 때로는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 책장을 넘기며 골몰하기도 했다. 

이듬해에도 제주를 묻고 책으로 잇는 질문도서관 전시가 열렸다. 이번에는 ‘지금, 누구를 돌보고 계신가요?’ 사람들에게 물었다. 제주시소통협력센터와 도서관 사서, 책방 운영자가 시민의 질문에 또 다른 질문을 던지고, 고민하며 답한 결과물이었다. 대안·공유 이동시설, 쓰레기 자원순환 등 워크숍에서 나온 여러 가지 주제 가운데 ‘발달장애 아동의 돌봄과 부모의 쉼’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들의 이야기는 질문을 통해 우리의 이야기로 확장되었다. 

지난해에는 세 번째 시즌을 맞아 ‘우리는 당신에 대해 조금 알고 싶습니다’를 주제로 제주책방 16곳과 함께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곳곳에서 진행되었다. 그중 각자의 생각을 기록하고 나누는 ‘릴레이 덧글’ 부스가 단연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나에게 꼭 필요한 말과 단어는 무엇일까?’ 속절없는 질문에 누군가 적어둔 답을 읽으면서 묘하게 위안을 얻은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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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부터 시작한 ‘질문도서관’은 지난 3년 동안 나의 삶과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전개해왔다. / 무수한 질문을 수집하는 한편,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탐색하는 시간을 선사했다.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질문의 속성 

지난 5월 30일부터 6월 23일까지 제주시소통협력센터 1층에서 열린 《질문도서관 아카이브 - 질문의 두께》는 지난 3년 동안 무한히 이어지고 쌓인 질문들이 커다란 밑그림이 되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지역도서관 사서, 동네책방 운영자, 창작자와 기획자 등 문화콘텐츠 생산자, 마을교육공동체 활동가 등 다양한 계층의 주민들과 함께 지난 4월부터 전시 준비 워크숍을 진행하였다. 지금까지 질문도서관에서 다루었던 다양한 질문들을 리뷰하는 한편 지금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오늘의 질문’이 재탄생했다. ‘동네공간이 지속가능하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우리는 어디서 놀 수 있나요?’ ‘당신에게 공동체가 필요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나는 나를 잘 알고 있나요?’ ‘나의 소비가 환경을 보호할 수 있을까요?’ ‘당신만의 잠시 멈춤은 무엇인가요?’ ‘제주의 일상은 행복한가요?’ 질문 하나하나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10여 명이 모인 ‘질문으로 떠드는 도서관’은 그중 ‘20살의 나와 50살의 내가 만난다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었다. 익명의 타인들과 만나 소통하면서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자기를 탐구하는 워크숍이었던 것. 자분자분 이어지는 대화를 엿들으며 깨달은 바가 있다.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좋은 소통이 시작된다는 것. 이러한 시간을 통해 삶의 빈칸이 하나둘 채워지리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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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과 함께 책, 디자인 용품, 디지털파일(QR코드) 등이 서가에 함께 전시돼 사유의 즐거움을 더했다. / 공감하는 질문에 답을 적는 ‘질문책갈피’가 자율 프로그램으로 운영되었다. 작성자를 대상으로 전시한 책과 용품을 추첨해 선물로 주는 이벤트도 진행되었다. 


질문도서관, 나의 질문이 우리의 질문이 되는 곳
질문도서관은 센터 1층에 마련된 열린 공간의 이름이자 앞서 살펴본 프로젝트를 지칭한다. 2020년 5월 첫 전시를 시작으로 지난 3년간 다양한 프로젝트를 전개하며, 나의 삶과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질문들을 수집하고,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탐색하는 활동을 펼쳐왔다. 지난 전시에 대해 궁금한 사항은 우측 링크를 참조하시길. https://bit.ly/3qXU0x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