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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합니다2022.11.22


토요일 오전, 이른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센터 5층의 다목적홀이 시끌시끌하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커다란 공간을 가득 채운다. 선생님도 아이도 맨발로 뛰고 구르고 한바탕 신나는 놀이를 하는 중이다. 이들은 대체 여기서 무엇을 하는 걸까? 살짝 문을 열고 들어가 이야기를 들어봤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발 뻗지 않은 곳이 없다. 미래 꿈나무를 키워내는 학교도 상황이 다르지는 않다. 특히 현재 3학년 이하의 초등학생들은 급작스러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학교가 온전히 가동하지 못한 상황에서 저학년 시기를 보냈다. 입학식을 원격으로 진행하고, 소풍은커녕 친구들과 실제 교실에서 한데 어울리며 수업을 받는 일도 거의 없었다. 

다들 알다시피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야 아주 기초적인 사회 규칙을 배우게 된다. 수업 종이 울리면 자리에 앉고,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가는 등 단체생활을 하면서 해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몸으로 익힌다. 그런데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아이들에게서 이러한 기회를 앗아갔다. 정상적인 기초교육의 수혜를 받지 못해 대인관계 형성에 마찰을 겪거나 학교생활에 부적응하는 등 정서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는 학생이 늘고 있다. 




학교 측에서 관찰한 학생들의 특수상황 및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정서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였다.  


대부분 초등학교는 비슷한 문제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 그중 제주남초등학교 2학년의 경우. 상황이 조금 더 두드러진다. 전체 학생 17명 중 여학생은 딱 1명만 있어, 성비 불균형 등으로 인해 균열의 파장이 한층 강하다. 활기차고 씩씩한 것을 넘어 사내아이들의 과격한 장난이 다툼으로 번지는 등 수업 진행에 차질을 빚으면서 선생님들의 시름이 깊어졌다. 

성장의 디딤돌이기도 한 친구와 선생님을 온전히 만날 기회를 1년 이상 잃은 우리 아이들을 위해 사회가 먼저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제주시소통협력센터는 이러한 공감을 기반으로 제주남초등학교, 제주특별자치도 교육지원청(혼디거념지원팀),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교육협동조합사람 등과 합심해 학생들의 슬기로운 학교생활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색종이를 가지고 센터피스를 만드는 아이들(위). 간혹 자유로운 영혼이 출몰해 교사들의 열정에 불을 지폈다.(아래) 


각 기관은 지난 4월 처음으로 만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협의를 통해 해결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학교 측에서 관찰한 학생들의 상황 및 전문가 의견 등을 수렴해 프로그램이 기획되었다. 아이들은 매주 수요일에 정규수업과 더불어 정서훈련을 받는 한편, 7월부터는 매달 네 번째 주 토요일마다 제주시소통협력센터에 모여 양육자와 함께 정서놀이교육을 받고 있다.

“이번 기회를 통해 학교에서 있었던 그간의 에피소드를 노출 시켜 아이들이 처한 문제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양육자들께서도 ‘이 정도일 줄은 미처 몰랐다’는 반응을 보이셨고, 가정에서의 협력을 약속하셨어요. 무엇보다 이번 프로그램의 취지가 ‘사랑만 듬뿍 받자’라는 것을 아이들이 인지하고 잘 따라오고 있습니다.” 

담임인 신혜선 선생님은 회차가 거듭될수록 더 좋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전문가를 매개로 모든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어 교사로서 한 뼘 더 성장하는 기회로 삼고 있다고 덧붙였다. 




부모교육 강사이자 사람협동조합을 이끌고 있는 강영자 이사장이 양육자 교육을 진행한다. 긍정적인 부모의 모습으로 건강한 자녀성장을 이끌 수 있도록 돕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다. 


5층에서 아이들이 한창 창작에 열중하고 있는 시각, 보호자들은 4층 세미나실에 모였다. 아이들의 내적 성장이 지연됐을 때, 그 흔적이 고스란히 오래 남을 수 있기에 학부모 교육 및 상담이 함께 이뤄지고 있다. 워킹맘, 한부모, 다자녀 등 각자가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아이의 건강한 성장을 바라는 마음만은 매한가지기에 모두가 열심이다. 

찾아간 날은 ‘애착과 소통’이라는 주제로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는 방법에 대해 교육을 받았다. 문제의 심각성을 공유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각자의 고충을 꺼내놓고, 솔직한 경험들을 주고받았다. 다음 시간에는 ‘부모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아이들의 오감과 신체 발달을 돕고, 학부모와 자녀가 교감할 수 있도록 하는 정서놀이교육. 


다시 아이들과 양육자가 한자리에 모였다. 학부모 교육에서 배운 대로 엄마, 아빠는 호기심을 갖고 내 아이가 만든 작품이 어떤 것인지 직접 찾아보고, 아이들은 자신이 어떤 주제를 갖고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조리 있게 설명했다. 

뒤이어 서로 교감을 나누는 시간이 주어졌다. 마주 앉아 단단한 주먹과 말랑말랑한 귀와 볼, 손가락과 손등, 팔꿈치와 무릎 등을 차례로 만져보는 보호자와 아이들. 알루미늄 쿠킹포일을 이용해 아이의 자그마한 발 모양을 본뜨고, 함께 미술놀이를 하면서 오롯이 둘만의 시간을 보냈다. 그런 양육자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얼굴에서 행복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안대를 착용한 양육자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는 아이들. 정서적 교감을 통해 신뢰와 행복이 쌓인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안대를 활용한 숨바꼭질. 두 눈을 가린 양육자는 오로지 목소리에만 의지해 아이가 있는 장소로 찾아가야 한다. 그중 도시락이 있는 곳으로 아빠를 인도한 아이가 있어 왜 그랬는지를 물었다. “아빠가 나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니까 배고플 거 같아서요.” 

또 다른 아이는 엄마를 의자로 안내해 쉬게 했다. 마냥 철부지라고만 생각했는데 어른들을 생각하는 마음씨가 곱고 깊어 모두가 눈시울이 붉어졌다. 웃고 떠들며 즐기는 사이 점심시간이 되었다. 정서놀이교육를 마치고 다 함께 따뜻한 식사를 나누며 프로그램을 마무리했다.

“처음엔 먹고 사느라 바빠죽겠는데, 이걸 왜 하냐고 화를 냈어요. 그런데 집에 가면 달라진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돼서 뭔가 뭉클해집니다. 다음 만남이 정말 기대됩니다.” 

어깨동무를 한 채 돌아가는 아버지와 아들. 그 뒷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희망이 차올랐다. 


지역자원협력형 돌봄 프로젝트 

지난 6월부터 시작된 정서놀이교육 프로그램은 오는 12월까지 진행된다. 마지막 수업에는 성과공유회를 열어 학생들의 정서적 변화를 공유할 예정이다. 이밖에도 제주시소통협력센터는 돌봄 공백 및 사각지대가 생기지 않도록 다양한 기간과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2022 소통협력 주간’에는 ‘지역자원협력형 돌봄 프로젝트 사례의 의미와 확장 방안’에 대한 포럼이 열렸으며, 제주남초등학교를 비롯한 원도심 사례를 심도 있게 다루었다. 추후 제주시소통협력센터 홈페이지에 포럼 관련 자료가 게시될 예정이다. 

기획포럼 모집 개요링크_https://jejusotong.kr/bbs/board.php?bo_table=2_1_1_1&wr_id=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