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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비행접시 팀 - "원도심의 다방은 단순히 차만 팔던 곳이 아니에요."2020.09.14

세모를 떠올린다. 

제주 원도심에 대한 이해가 깊은 꼭짓점, 문학적 감수성으로 몽글몽글한 꼭짓점, 그리고 이를 시각적으로 비상하게 전달하는 한 꼭짓점. 

비행접시 팀으로 탄탄해진 이 세모의 중심은 ‘다방’이다. 그러나 그들이 닿은 발걸음은 다방 이상, 그리고 그 후다.





(좌로부터) 강민수 디자이너, 박은희 대표, 이상홍 시각예술가, 현택훈 시인. 김신숙 시인은 사정상 부재 중. 




비행접시 팀 예습하기

‘0시 싸롱 : 문이 열린다’란 활동명으로 #제주생활탐구 1기에 도전장을 던진 다섯 명의 예술인. 

비아아트 박은희 대표, 현택훈과 김신숙 시인 부부, 이상홍 시각예술가, 강민수 디자이너는 다른 세대와 외모지만 예술을 껴안아 닮았다. 

오늘이 내일이 되는 동시에 다른 오늘이 되는 ‘0시’는, 경계를 두면서 허물어뜨리고 다시 세우는 그들의 탐구 과정에 근접하다. 


다방을 중심으로 제주 원도심이 가질 내일의 돌파구를 찾는 비행접시 팀. 

오늘도 발로 뛰며 다방의 기억을 수집하고 새로운 문화 부흥의 꿈을 맛본다.


숫자로 읽는 제주생활탐구





목이 탄다, 과거 문화예술인을 위한 오아시스의 발견


 

대동호텔의 뒷골목에 위치한 다방. 현존하는 다방은 그들이 찾는 문화예술인의 오아시스는 아니다. 




제 고향은 제주시 화북이에요. 변두리에 살면서 할머니는 늘 동문시장에 갈 때면, 성 안에 간다는 표현을 했죠. 

동문이라는 존재가 제주 성이 있었다는 이야기니까. 

그런데 언젠가 제주 근대 문학의 태동이 이 원도심의 다방에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런데 다방은 그냥 커피 마시는 곳 아닌가? 그게 가능한가?


의아했다. 현택훈 시인의 호기심은 구술과 문헌을 통해 서서히 풀렸다. 

한국 전쟁으로 인해 대거 이주민이 발생한 상황에서 오히려 제주엔 문화예술의 꽃이 피었다는 소식이었다. 

박목월이나 서정주 시인이 제주 다방에 들렀고, 고은 시인 역시 60년대 제주에 자리 잡으면서 

자연스럽게 제자들이 생기고 동인이 생성되면서 문학지가 만들어지는 등 문화가 형성되었다는 이야기다. 

한편, 제주아트페어로 연을 맺은 박은희 대표와 이상홍 시각예술가, 강민수 디자이너를 비롯한 김신숙 시인이 

제주 원도심 콘텐츠 기획 사업을 진행하던 중, 대동여관(현. 대동호텔)의 ‘0시 싸롱(다방)’에 관심이 기울어지던 차였다. 

다섯의 접합점은 결국 제주 원도심의 다방. 

“다방 중심으로 문화예술 지도를 만들면 어떨까?”란 재미가 제주생활탐구를 통해 발현되었다. 이상홍 시각예술가 말마따나, 시작은 가벼웠다.






현택훈 시인은 아내인 김신숙 시인과 함께 팀 활동에 문학적 감수성을 불어 넣고 있다. 




50년대를 기점으로 제주 원도심에 있던 다방의 여러 기능 중 하나가 

문화 예술인이 모여 대화도 하고 발표도 하는 거였어요. 

문인은 시각 예술가와 다르게 갤러리보다 다방을 통해 발표하는 경우가 많았죠. 

‘청탑다방’과 그 후신인 ‘0시 싸롱’ 역시 그 역할을 했던 곳이고요.




다방의 역할은 그 운영주와 예술가의 교류 가운데 가능했다는 점을 짚는 이상홍 시각예술가. 제주와 서울을 왕래하는 경계인이다. 




비아아트의 ‘1970 대동여관’ 전시 내 흑백 사진을 보라(좌). ‘0시 싸롱’의 열린 문이 누군가를 기다린다. 
 




‘0시 싸롱’은 대동호텔 전신인 대동여관 안에 있었다. 

단순히 숙박업소 안에 있는 휴게 공간이 아니라 예술가와 주인이 함께 만든 공간이다. 

과거에 박제된 사진 속 그곳은 현재의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누구나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듯 닫힌 여관 문과 달리 열려 있다. 

그 시절 다방의 역할은 작고한 문충성 시인의 시집 <허물어버린 집>에서도 그 일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6.25 때 피난 왔던 예술인들 

소설가 계용묵은 문예지 만들려 

신고 다니던 구두까지 팔았고 

날마다 들락이던 동백다방은 이제 

없지만 1960년대엔 다방들이 와자자 생겨나 

청탑다방에서 처음으로 유행하던 샹송들도 듣고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 차이콥스키도 듣고 

극장들, 코리아극장, 중앙극장, 제일극장, 당구장들

갈치국, 각제기국, 순댓국, 멸치국 식당들과… (이하 중략) ​


-        문충성 <허물어버린 집> 내 ‘칠성통(七星通)’ 중 


동백다방은 <백치 아다다>로 익숙한 소설가 계용묵의 아지트였다. 

그는 제주 문학청년과 함께 종합교양지 ‘신문화’와 동인지 ‘흑산호’ 등을 세상에 선보였고, 

그의 영향을 받은 문학청년 역시 ‘별무리’라는 문학 모임으로 꿈을 키웠다. 

옛 동백다방의 터엔 현재 ‘계용묵 선생의 문학산실’이란 표석이 있다. 

칠성통을 점거한 패션숍 사이, 세월 따라 부식되어 방치된 채다. 

칠성통에서 태어나고 자란 뒤 다시 돌아온 박은희 대표가 원도심의 다양성 부재에 주목하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동백다방에 머물며 여러 문인을 키워낸 계용묵 소설가에겐 참 송구스러운 일이다. 그의 표석은 현재 읽기조차 어렵다. 




칠성통의 터줏대감인 50년 역사의 대동호텔. 그 운영주인 부모 품에서 자란 박은희 대표는 제주 원도심이 늘 애틋하다. 



어릴 땐 잘 몰랐죠. 지금 생각하면, 북초등학교 다닐 때 칠성통을 걸으면 없는 게 없었어요. 

지금은 옷 가게, 신발 가게뿐이잖아요.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한 장면처럼 

어떤 초콜릿을 먹을지 모를 다양한 맛이 이 안에 있었거든요. 

제게만 해도 놀이터이자 충분한 자양분을 준 곳이었어요. 

그 다양성이 지금까지 이어졌다면 좋겠지만… 다방만 두고 봐도 박목월 시인 이야기 그 이상을 넘어가지 못해 답답했어요.


현재 비행접시 팀이 탐구하는 다방의 근원지인 원도심. 

박은희 대표는 관에서 주도하는 원도심 살리기 방안 이상의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절박함을 전하며, 제주생활탐구의 의의를 몸소 표현했다. 

제주가 가진 원형적인 것들로부터 문화가 태동했다는 걸 인지한 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발견되는 풍성한 자산을 그저 묻어둘 수만은 없을 터. 

팀은 두 팔 걷고 나섰다. 수소문하고 발로 뛰었다. 요약하자면 ‘기억 수집하기’다. 물론 ‘0’인 상태에서부터.





기억의 소환이 불러일으킨 살가운 파장들




4가지 원도심 구역의 텅 빈 지도. 인터뷰이의 구술을 교차 편집했을 때, 세대 간 상이한 기억이 만나기도 한다.




여기에 다방에 대한 옛 기억을 가진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담아내려고 해요. 

원도심이란 실제 행정적 구역이 그리 많이 달라지지 않았으니, 지금 구역 위에 맵핑해보는 거죠. 

이 자리엔 어떤 다방이 있었고, 거기에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드러내 보자는 생각으로요.


테이블 위로 아무것도 없는 원도심 지도가 펼쳐졌다. 

그 위로 문인이나 예술가는 물론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구술로 얻은 이야기가 쌓이고 있다. 

가능하다면 구술하는 이의 필체가 고스란히 담긴다. 이 과정에서 단순히 수집 정도일 거란 당초의 계획은 박살 났다. 

다방 하나만 해도 여러 결이 섰다. 애초 이 다방은 어떤 자리였고 선친은 무엇을 했는지 등 이야기의 화수분이 열린 까닭이다. 

현택훈 시인은 이런 좋은 예감을 서둘러 경험했다. 





대동여관에 묵었던 최초 제주 지도 제작자의 자필 편지. 박은희 대표의 아버지인 박용철 씨에게 조정쇄본 6매 중 하나를 선물했다. 

이런 감성이 비행접시 팀을 흔들었다. 




현택훈 시인의 자필로 탄생한 사적 지도. 붉은 우범지대를 보라. ‘삥뜯던’ 골목은 강민수 디자이너의 세대엔 다른 골목으로 옮겨졌다는 후문. 



처음엔 원로 예술가나 다방을 창업한 박 대표의 아버님이 주로 인터뷰 대상자이겠거니 했어요. 

그 대상자를 폭넓게 물색하고자 50대 초반인 김세홍 시인에게 문의했는데, 되레 어떤 다방 이야기냐고 묻는 거예요. 

선배에게 들어온 다방 이야기를 쭉 풀면서 문헌에도 없는 원도심의 식당이나 중광 스님의 그림 이야기도 덧붙이더라고요. 

한 사람만 해도 그 기억의 양이 풍부했어요.


이 때 이상홍 시각예술가는 딴지를 걸었다. 제주인인 중광 스님에 대한 연구가 왜 좀 더 면밀히 되지 않느냐는 반론이었다. 

이때 지금은 사라진 갈비탕집인 ‘일억조 식당’이 등장한다. 김세홍 시인 왈, 200호 사이즈의 그림이 그 식당의 벽면을 한가득 채우고 있었단다. 

민담 같은 이야기다. 이와 달리 구술로 들었던 이야기가 고증된 자료에서 찾아지기도 했다. 

한 사람의 기억은 다른 사람의 기억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일이 점점 커지는 기분. 그리고 점점 재밌어졌다.


정해진 기간 내 얼마큼 편집할지에 관해선, 아직 회의하지 못한 상태예요. 

다양한 스펙트럼이 한 종이에, 혹은 어떤 식으로 얹어질 수 있을지도 고민되고요. 

다만, 지도가 공개될 시 보는 이들이 ‘어? 나도 이 이야기를 알고 있는데, 여기 뭐 있었는데,’하면서 점차 확장되지 않을까 해요. 

그러면 박 대표가 말한 그땐 그랬는데, 왜 지금은 없는지에 대한 원도심의 문제점도 자연스럽게 환기될 것 같고요. 

다음 단계의 제안이나 또 다른 탐구가 연결되지 않을까 기대되죠.​




 



만일 문화예술인이 애호한 당시의 다방이 지금의 제주에 생긴다면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그들은 다방의 본질에 가장 충실하면 된다고 입을 모은다. 

옛 다방의 모습을 그대로 옮기는 단순한 복원 혹은 재연에 그치는 게 아니라 

과거와 현재, 미래의 예술이 혼재하는 살아 있는 문화가 이 공간 안에서 숨 쉬는 것. 

이번 탐구를 통해 그들은 또 다른 숙제를 내어준다. 물론 재미나게.





활동명과 더불어 비행접시 팀의 ‘우아한 시체’* 놀이에서 나온 단어의 조합. 그들답고 기발하다.  



*우아한 시체(cadavre exquis)란? ‘우아한 시체가 새 와인을 마시리라.’에서 비롯된 초현실주의 예술가의 창작 기법. 

당초 ‘시체, 우아한, 마시다, 와인, 새’란 단어의 조합이 이룬 시 문장의 참신함을 본따 미술 같은 다른 예술 영역에도 시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