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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①] 위기를 기회로, 재탄생의 맛2021.01.21



오래되면 퇴물이다. 소용없으면 버린다. 이 모든 부정적인 생각을 화끈하게 뒤집어 버린 ‘세계 속 재탄생의 공간’. 

위기는 도리어 독보적인 기회이자 미래로 치환할 수 있음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공간을 기반으로, 주민 주도의 지역 문제 해결을 시도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회혁신 플랫폼. 

제주시 소통협력센터는 제주시 원도심에 자리한 옛 건물을 리노베이션하여 올해 여름 오픈할 소통협력공간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행정안전부가 추진하는 지역거점별 소통협력공간은 지역주민들의 참여와 협력을 바탕으로 지역사회혁신 생태계를 조성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흐름에서 커먼즈(공유자원, 공유지식)와 사회혁신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세계 속 커먼즈 공간과 사회혁신의 가치를 탐색해보는 기획 연재를 마련했습니다. 

그 첫번째 이야기, 유럽의 재생 공간에서 발견한 사회혁신의 길을 따라가봅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저력

독일 에센의 졸버레인(Zollverein) 탄광 산업단지

 

화창한 날이면 하얀 구름이 조율하는 이곳의 화양연화가 된다. © Jochen Tack / Stiftung Zollverein

 

팔팔 끓는 용광로를 재연한 듯한 박물관 직행 엘리베이터. 여러분은 과거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을 탔습니다.


공장 수영장이라니… 2001년경 아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알려졌다. © Jochen Tack / Stiftung Zollverein 


각종 공연이나 컨퍼러스가 열린다. 사람들은 자연스레 모이고 소통한다. © Jochen Tack / Stiftung Zollverein

 

공간이 사람을 지배한다는 지론은 일개 춘몽이 아니다. 단순히 자신이 들어선 카페로부터도 마치 어떤 사람이 된 듯한 심리 변화는 누구나 겪어봤을 터. 시내로부터 뚝 떨어진 졸버레인의 첫인상은 ‘멋있다’.다. 노출 콘크리트와 서슬 퍼런 철제 기둥을 중심으로 한 업사이클링 공간에, 통창 유리로 세상 밖을 조망할 수 있는 ‘핫플’ 정도랄까. 이 정도로만 파악한다면 이곳에 참 미안한 일이다.

실제로 여긴 지난 86년 완전히 숨이 멎은 탄광 지대다. 경제 산업의 변화로 150여 년 내공의 탄광 산업은 사양길에 접어들었고, 그 지대는 언뜻 골칫거리 땅이 될 위기였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법하건만, 당시 노트라인 베스트팔렌(Nordrheinwestfalen) 주정부는 오히려 미래 지향적인 복합문화공간으로 전환했다. 랜드마크인 샤프트12(ShaftXII)와 지척에 널린 85개의 건물은 갤러리로, 박물관으로, 카페로, 수영장으로 사람들을 자석처럼 끌어들이는 공간이 되었으니까. 일상 속에 스며드는 문화예술 향연으로 문턱 낮은 소통이 자연스레 이뤄진다. 루르 박물관Rhur museum 속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움직이는 석탄의 역사는 졸버레인의 존재감에 방점을 찍고 있다.

200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될 법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한 공간에서 오감으로 즐기는 영감의 화수분답다. 지난 역사로부터 쌓이고 쌓아가는 스토리는 이곳을 차별화하는 핵심 키워드. 개발이 낡은 것을 무조건 부수는 방식으로 통하는 사고방식에, 오늘도 건재한 채 일침을 놓고 있다.


빈촌이 부촌으로 되기까지
스위스 취리히의 취리히 웨스트(Zurich West) 

사진 제공 : 스위스정부관광청 www.myswitzerland.co.kr

 

전 세계 바다를 유랑하던 컨테이너가 쌓여 프라이탁 본사란 존재감으로 취리히 웨스트에 정박했다. 


임비아둑트는 스위스의 패셔니스타라면 필수 코스로 통한다. 

짐짓 투박해 보이는 벽돌 건물 내에 21세기 세련미를 표방하는 바와 레스토랑이 숨어 있다는 사실. 


토니 아레알 내엔 취리히 미술대학과 더불어 디자인 박물관(Museum für Gestaltung)이 자리해 영감의 화수분 역할을 한다. 

 

제아무리 신사적이고 아름다운 나라라도 그늘은 있는 법. 스위스 역시 마찬가지다. 심지어 스위스 최대 규모의 시내인 취리히의 서쪽에 말이다. 취리히 웨스트는 구 할렘의 서먹한 기운이 감돌던 구역이었다. 검은 연기를 내뿜던 중공업 공장 지대로 나라의 경제를 이끌던 이곳은 어느새 매몰차게 버려지고 20여 년 차디찬 무관심의 온상이 되었다. 규모만 해도 약 139만㎡(약 42만평)에 달했다.

취리히시가 발 벗고 나섰다. 2000년대 취리히 웨스트 재개발을 통해 스튜디오와 갤러리, 대학 등으로 공간을 채우면서 성공적인 성형 수술을 감행했다. 그 첫발은 시프바우(Schiffbau)였다. 본래 증기선을 만들던 조선소다. 본판은 민망할 정도로 그대로 살렸다. 치솟은 천장 아래 노출 콘크리트와 파이프의 섬뜩한 등장이 다른 현대적 요소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유일무이한 기품을 흐르게 한다. 여기에 다른 콘텐츠를 채워 넣었다. ‘더 무드’ 재즈 클럽은 물론 취리히에서도 내로라하는 ‘라 살르(LaSalle)’ 프렌치 레스토랑도 여기 있다.

취리히 웨스트가 세운 변화의 축은 ‘지속 가능성’이다. 젊다. 생기가 돈다. 여전히 공간을 기획하고 실험 중이다. 맥주 양조장을 갤러리로 대체한 ‘뢰벤브로이 아레알(Löwenbräu-Areal)’, 제철 공장을 바꾼 복합 상가인 ‘풀스5(Pulus5)’와 아치형 구 철도 교각을 관통하는 쇼핑몰 ‘임비아둑트(Im Viadukt)’, 17개의 컨테이너를 쌓아올린 프라이탁(Freitag) 본사, 급기야 유제품 공장(토니 아레알, Toni-Areal)에 취리히 미술대학(Zurich University of the Arts)이 들어섰다. 이 모든 머릿속 아이디어를 현실로 풀어내기까지 성급해 하지 않았다. 애초 취리히 웨스트 재탄생의 목표 시간이 25년. 시간과 창조의 진정한 가치를 음미하게 한다.


 

'에코'란 동전의 양면

독일 뒤스부르크의 랜드 스케이프 파크(Landschaftspark Duisburg-Nord)


공원의 진정한 생명은 찾는 이들의 발끝으로부터 나올 터. 오르고 뛰고 뒹굴고, 행동의 제한이 없다. 

해 질 녘, 옛 공장의 구조물로 필터링된 세상이란 숲. © landschaftspark  

차디찬 쇠붙이라 해도 사람과의 자연스러운 교감을 이끄는 건 자연의 힘이다.
 

거친 벽면을 활용해 클라이머의 도전을 활활 불태우기도 한다.


에코와 공장이란 두 단어를 바라본다. 동전의 양면처럼 전혀 다른, 그저 양립하는 존재로만 보인다. 여기는 이 교집합 없는 부조화를 수면 위에 올린 뒤스부르크의 환경 공원이다. 첫인상은 지금 막 가동을 멈춘 듯한 철강 및 석탄 공장이다. 삭막한 철붙이가 이어져 외곽을 주름잡는 220헥타르(66만5천5백평)의 지대다.

지난 85년경까지, 환경 오염의 주범 지대로 찌푸린 눈살을 감당해왔다. 놀라운 것은 이곳의 활로로 잡은 주제다. 환경을 보존하는 공원이었다. 오염을 보존으로, 정반대의 고단한 대치를 감행했다. 쇠붙이 사이로 나무 넝쿨이란 생명이 이어지고 푸릇푸릇한 키높이 나무 안으로 공장 시설이 보호되었다. 차가운 벽면으로 까르륵 웃음이 꽃피울 놀이기구가 연결되고, 아무짝에도 필요 없을 듯할 부품은 안내 표시판이 되었다. 91년부터 환경 건축가인 피터 라츠를 필두로 5개의 기획팀이 아이디어를 끌어모은 결과물이었다. ‘기억’이 총 디자인의 포인트. 과거를 기억하고, 또 오늘의 체험을 기억하라는 뜻으로 다가온다.

공간을 획기적으로 재생해봤자 즐길 수 없다면 소용없는 법. 94년부터 본격적으로 사람과 함께 성장하고자 하는 연구가 효력을 발휘했다. 공장 사이로 유려하게 자전거 페달을 밟는 청년, 거친 암벽장 위로 앙칼진 힘줄을 자랑하는 클라이머, 철제 미끄럼틀 아래 모래바람을 일으키는 꼬맹이, 콘서트장으로 돌변한 이곳의 공기를 채우는 관객들이 이곳을 진정한 공원으로 만드는 주역이 되었다. 코로나19의 위기 속에서도 주저앉지 않았다. 해마다 번뜩이는 축제와 행사로 사람을 모이게 하는 대신 온라인상 사진 갤러리를 열거나 개인적으로도 방문할 수 있도록 공원의 밤을 소리와 빛으로 물들이는 등 다른 가능성을 시도했다. 푸른 에코 정신이 살아 숨 쉬는 24시간 공원이다.

공간을 공간답게 하는 건 역시 사람의 몫이다. 한 공간 안에 사람과 사람이 모이고, 누구나 각자의 방식으로 일상 속 불편을 논의하는데 이어 지역의 문제해결 방법을 고민하기까지 손을 뻗어나간다. 소통협력공간에서의 사람과 사회의 선순환을 기대한다.


글. 강미승 컬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