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시대, 남을 위해 내어준 마음 한 칸의 가치는 더욱더 값지다.
반갑고, 고맙고, 더불어 우리의 현재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중증장애아동의 부모를 위해 나선 프로젝트 쓰리GO와의 대화에선 은은한 바이올린 선율이 울려 퍼졌다.
곡명을 붙이자면, ‘함께하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좌로부터) 전병묵 전 특수교사, 박이정 바이올린 강사, 황현철 현 특수교사. 가치를 모으고, 삶을 나누고, 공동체를 이루기를.
프로젝트 쓰리GO 예습하기
애초 음악을 통한 인연이었다. 바이올린 선생과 제자로 뭉친 이 팀은 배움의 경계가 없다.
제자가 곧 특수교사 선생이기도 한 까닭이다.
20년 이상의 현ㆍ퇴직 특수교사 셋과 바이올린 강사의 합일점은 ‘장애아동 부모의 쉼을 위한 공동체 프로그램 탐구’.
중증장애아동 부모의 고단한 삶에 가슴으로 공감하며 ‘쉼’ 프로젝트를 기획, 추진했다.
이 탐구의 배후에는 도와야 살 수 있다는 공동체의 힘이 완강히 버티고 있다.
배움이 낳은 또 다른 배움의 길목에서
제가 팀원과 함께한 시기는 약 2~3년 정도예요. 원래 다른 특수교사와 바이올린 강사의 인연은 10년 이상이고요.
바이올린 수업을 함께한 건데, 그저 배우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각자의 삶을 공유하게 되더라고요. 이런저런 고민을 자연스레 이야기하게 되었죠.
팀의 막내로 서두를 꺼낸 황현철 특수교사의 경력만 해도 자그마치 21년.
정년 퇴임한 전병묵 교사와 김신주 교사의 경력을 도합하면 60여 년의 특수교육 경험치가 쌓인다.
시작은 단순한 사교모임이 맞다. 그러나 이들의 시간은 또 다른 배움을 낳았다.
특수교사가 예술의 세계에 물들어가는 사이, 박이정 바이올린 강사는 어깨너머로 특수교육에 익숙해졌다.
끈끈한 공감대는 어느덧 이들 모두를 장애아동 부모의 편에 서게 했다.
특수교사의 선·후배 사이인 이들은 열정과 냉정 사이를 오가며 문제 해결에 나섰다.
특수교사라면 누구나 이런 고민을 한 번쯤 해봤을 거예요. 교사의 역할은 보통 학생의 등교부터 하교까지예요.
우리가 담당하고 책임지는 시간이 그렇죠. 하지만 부모는 그 외 모든 시간을 아이와 함께하기에 어려움이 많아요.
올해 초 비극적인 소식 하나도 접했는데요. 제가 작년에 담임을 맡았던 학생의 어머니가 아이와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했어요.
코로나19로 등교를 못하던 시기에, 집에서 돌보는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한 듯합니다. 부모가 얼마나 힘든지 다시 생각하게 됐죠.
가까이에서 아이와 소통했던 황 교사는 밝고 적극적인 부모를 기억했다.
‘내가 왜 몰랐지? 난 정말 장애인의 친구였나?’란 자책은 자연스러웠다.
그들의 삶을 지원, 응원하는 사람인 특수교사로서 그대로 주저앉을 수만은 없었다.
‘왜 내게 힘들다는 전화 한 통을 못했을까?’란 생각은 곧 도움을 요청할 여유조차 없던 부모의 입장을 재고하게 했다.
교사와 부모 사이의 간극을 냉철하게 보게 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과연 부모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쉼’이었다.
그 쉼을 실행하기 위한 ‘무엇’을 고민하던 차, 제주생활탐구는 이들 연구의 도화선이 되었다.
제주생활탐구 활동을 위해 ‘프로젝트 쓰리GO’로 팀명을 새로 지었어요. 우리가 부모의 삶을 이해하고 함께하자는 취지였죠.
관련 문헌 조사부터 도내 장애 가정의 설문조사, 관련 단체와의 협업을 위한 방문 등 장애아와 그 부모를 대상으로,
실무 경험을 기반한 탐구 활동을 이어나갔습니다.
부모의 진정한 파랑새는 여기에 있다
잡지 형식으로 만들고자 했던 보고서의 일면. 설문조사와 더불어 진행한 다섯 가정의 심층 인터뷰 핵심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됐다.
장애아동의 부모를 직접 만나며 이제껏 지녀온 편견을 알게 된 박이정 강사. 자신에게도 상관있는 사회적인 문제로 받아들였다.
사실 제주에서 장애아동 부모의 ‘쉼’을 찾으려는 시도가 전무했던 건 아니다.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기도 했다.
문제는 역시나 참여였다. 지속적인 모임이 이뤄지지 않았다. 정작 당사자인 부모의 신뢰가 없던 까닭이다.
프로젝트 쓰리GO는 쉼의 주체인 부모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확보해갔다. 놀랍게도, 자신의 ‘쉼’을 사치라 여기는 부모를 만나기도 했다.
부모가 아이와 떨어져 있으면 쉴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아이를 봐주기만 하면 부모에게 자연스레 ‘쉼’이 제공될 줄 알았죠.
그런데 아이가 행복해야 본인도 쉴 수 있는 거더라고요. 부모는 늘 아이에 대한 염려가 많아 어디에서도 편히 쉬질 못하는 거예요.
담임을 맡은 아이와 하룻밤 같이 잔 적도, 영화 감상을 좋아하는 아이를 데리고 극장에 다녀온 적도 있었는데요.
그때 부모님은 교사인 저와 함께 있을 때 아이가 행복했을 거로 생각해 맘이 편한 거였어요.
‘쉼’의 정의부터 다시 써야 했다. 설문 내용은 세 가지.
현재 가족의 스트레스 정도와 부모가 원하는 쉼, 그리고 이들의 삶을 지원할 방법을 140여 가구에 물었다. 갖가지 의견이 속출했다.
나만을 위한 힐링 시간 및 주말의 데이 케어에 대한 필요성, 여러 장애인 관련 정책 및 기관 서비스에 대한 정보 수급 등이었다.
이의 핵심 키워드는 부모가 믿을 수 있는 돌봄. 자녀가 안정된 상태로 행복을 느끼는 조건을 전제로 한 쉼을 원했다.
프로젝트 쓰리GO 보고회의 안과 밖. 음식과 이야기, 놀이를 함께 공유하는 시간이 또 다른 쉼이 아니었을지. @프로젝트 쓰리GO 제공
주말 데이 케어를 위해선 신뢰감 있는 도우미의 확보가 중요해요.
현직 혹은 퇴직한 특수교사 중 같은 마음을 가진 분이 모여 1:1 돌봄을 한다면 더없이 좋겠죠.
그리고 블로그 같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부모 간 소통의 장도 필요해 보여요.
여기에 장애인 부모회나 발달장애인지원센터, 이동을 돕는 ‘누리카’ 등의 정보도 제공할 수 있겠죠.
급한 상황에 닥친 부모가 상시 상담할 수 있는 창구 마련도 중요합니다.
정답은 있지만, 여전히 난제다. 다음 단계인 실질적인 쉼의 실행은 팀만의 힘으론 역부족이다.
부모와의 시간을 확보한 대화, 그를 통한 신뢰, 그리고 점차 관계를 확장해 나가며 여러 유관 기관과의 협업을 통해 함께 풀어야 가능한 일이다.
불가능해 보이진 않는다. 이들의 시작이 그랬듯 진심이 낳은 탄탄한 관계를 통해 차근차근 밟아나갈 것이므로. 우연이 필연으로 건너가고 있다.
프로젝트 쓰리GO의 문장은 ‘그러니까 이제 한걸음 나아갈 일만 남았다.’란 포부를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