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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맛있는 반란이 시작됩니다2023.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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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물회, 옥돔구이, 갈치조림…. 육지 사람이 제주 별미라 일컫는 요리들이 진짜 제주의 맛일까? 외지인의 기호에 맞춰 본연의 맛을 잃어가는 제주음식, 그러면서 식탁에서 점점 자취를 감춰가는 토종 식재료들. 강병욱 셰프는 안타까운 상황을 그냥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넘은 봄' 예습하기 @lastspring_jeju
강병욱 셰프는 홍콩, 두바이, 카타르 등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는 세계의 미슐랭 레스토랑을 거쳐 국내 유명 호텔의 메인 셰프를 지낸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다. 해외에서 활동하며 도리어 한국의 발효음식과 식재료가 지닌 우수함을 깨닫게 된 그는 점점 사라져가는 제주의 식문화를 누군가는 보존하고 계승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제주 음식 연구소 ‘넘은 봄’의 문을 열었다. 제주의 여러 농가를 직접 돌아다니며 식재료에 대한 발굴과 기록, 음식 개발에 힘을 쏟는 한편 유튜브 채널을 통해 팜 투 테이블 관련 정보를 제공하며 농가와 상생을 이어가고 있다.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출신이잖아요. 오라는 곳도 많았을 텐데 어쩌다 제주에 오게 됐어요? 

많은 경험을 쌓고 한국에 돌아왔는데, 뭔가 허전한 마음이 들었어요. 해외에서 근무했을 때는 직접 농장에 가서 농부들을 만나 필요한 재료를 수급해서 요리하기도 했는데, 그게 굉장히 재밌었거든요.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농촌 프로그램에 참여해 직접 일하면서 팜 투 테이블1)을 즐기곤 했어요. 그러던 중에 기회가 닿아 제주에 왔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바다로 둘러싸여 해산물도 풍부하고, 마음만 먹으면 농장에 바로 갈 수도 있고. 신기하게도 제주는 한국이지만 육지와는 굉장히 다른 식문화와 식재료를 갖고 있었어요. 그런 매력에 빠져 제주에 정착하게 됐어요. 
1) 팜 투 테이블(Fatrm To Table)은 말 그대로 농장에서 기른 채소와 허브 등을 식탁에서 바로 먹는 것을 의미하는데, 최고로 신선한 재료를 식탁에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셰프가 동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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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과 향이 산뜻한 제철 제피(표준어 ‘초피’)를 다듬는 중.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손길에서 특별함이 비롯된다. 

 

‘넘은 봄’이라는 이름이 참 예뻐요. 특별한 뜻이 있나요? 

‘넘은’이란 말은 제주 방언이에요. 육지 말로는 ‘지난’이라는 뜻입니다. 간단히 해석하자면 ‘지난봄’이란 말이죠. 그러니까 예전에 먹었던 것, 우리의 식재료나 레시피를 보존하기 위해서 지난봄에 먹었던 것을 기억하고 남기자라는 의미예요. 이곳에서 제주 전통 식재료와 레시피를 제 스타일로 복원해서 좀 더 현대적으로 바꾸는 요리를 선보이고 있답니다. 기본적으로 한식을 베이스로 발효음식을 활용하고 있고요. 


각별히 애정하는 제주의 식재료가 있다면? 하나만 추천해주세요. 

옛날부터 제주에서는 큰 잔치를 열거나 귀한 손님이 왔을 때 ‘마른둠비’를 대접했어요. 제주 방언으로 ‘둠비’는 두부를 뜻해요. 그런데 육지와 달리 물기가 많지 않아요. 오랜 시간 압축해서 쫀쫀해요. 공부해보니까 일반 두부보다 단백질 함량이 3배나 높더군요. 이렇게 훌륭한 음식인데 타지 사람들은 아예 모르더라고요. 나부터 활용해보자는 생각으로 메뉴 개발에 공을 들이고, SNS나 인터넷상에 많이 알렸어요. 별다른 조리 없이 그대로 샐러드에 활용하거나 와인 안주로 즐길 수도 있고, 수분을 짤 필요가 없으니 만두소로 활용해도 좋답니다. 요새는 택배가 잘 돼 있어서 육지는 물론 해외까지 갈 수도 있잖아요. 꼭 한번 맛보시길 권합니다. 


지역 농가로부터 식재료를 공급받는다고 들었어요. ‘못난이’ 농산물에 관심이 많던데. 

현재 레스토랑에서 쓰는 식재료의 90% 이상이 제주에서 나온 것들이에요. 못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게 적절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판매를 위해 농산물은 등급이 매겨지는데, 단지 못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시장에서 외면받아 폐기되는 물량이 정말 많아요. 그래서 농부님들이 사시사철 열심히 키워주시고 수확해주신 식재료를 생김새나 형태, 그리고 크기를 이유로 외면하지 않고 가져와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요리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이런 식재료를 활용해서 등급 구분 없이 모든 식재료가 맛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단순히 요리를 내놓는 게 아니라 어떤 생산자가 어떻게 키워낸 것인지 손님들에게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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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농가에서 함께한 팜 투 테이블 메뉴(상). 제주 식재료가 가진 이야기를 발굴해 기록하고 사람들에게 알린다.(하) 


요리사로서 일종의 소명의식이 있는 거 같아요. 

세계의 수많은 레스토랑이, 각각의 요리사가 모두 자신만의 철학이 있을 거예요. 그게 요리로 표현되는 거죠. 백 마디 말보다는 한 그릇의 요리가 의미 전달에 훨씬 효과적이니까. 좋은 식재료는 기본 바탕이에요. 그런데 한국은 어딜 가나 채소나 과일이 모두 똑같이 생겼잖아요? 파는 것도 엇비슷하고. 이게 되게 소름 돋는 일이거든요. 사람에게도, 지구에도 절대 좋은 게 아니에요. 팜 투 테이블은 이런 고민을 나누기에 가장 최적화된 행사라고 생각해서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하고 있습니다. 농가, 소비자, 셰프가 상생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싶거든요. 

현장 반응은 어떤가요? 일종의 야외행사인데 준비가 힘들지는 않나요?

해외에 있을 때 팜 투 테이블을 많이 경험했어요. 이미 하나의 문화처럼 자리 잡았죠. 이렇게 중간 단계 없이 농가와 소비자를 바로 만나게 하는 문화 경험을 사람들에게 선사하고 싶었어요. 수고스럽다는 생각은 안 해요. 현장 반응이 굉장히 좋아서 힘든 것도 금세 까먹게 돼요.(웃음) 내가 먹는 식재료를 농장에서 직접 보고, 그 자리에서 파인다이닝2)으로 접하는 게 우리나라에서 아직 흔치 않은 경험이잖아요. 이런 활동이 다른 분들에게도 영감을 줘서 제주만의 특색이 담긴 다양한 이벤트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어요. 
2) ‘훌륭하다’는 뜻의 파인(fine)과 ‘정찬’을 뜻하는 다이닝(dining)이 결합해 ‘최상의 식사’를 뜻한다.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실천에도 적극적이던데, 노하우 좀 알려주세요. 

맛있게 만들어서 다 먹는 게 제일 좋겠죠?(웃음) 그렇게 해도 버려지는 부분이 많아요. 예를 들어 카레를 끓인다고 가정하면 감자나 양파 껍질이 모두 쓰레기가 되겠죠. 레스토랑은 가정에 비해 만드는 양 자체가 달라서 도리어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기 용이한 측면도 있어요. 채소 껍질과 뿌리, 손질하고 남은 생선머리나 닭뼈 등을 한데 모아 육수를 만들거든요. 착즙한 과일이나 채소로 소스를 만들기도 하고요. 이렇게 먹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맛있는 것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게 중요합니다. 가장 쉬운 방법은 남은 식재료를 건조시켜 곱게 빻아 파우더 형태로 만들어 요리할 때 쓰는 거예요. 이렇게 천연조미료를 만들어 사용하면 속이 편안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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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메뉴를 구상 중인 강 셰프. 오픈형 주방인 데다 창가를 통해 김녕 ‘청굴물’을 볼 수 있어 눈이 호강한다. ⓒ넘은 봄


‘톡톡 다이닝’ 셰프로 활약하게 된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제안을 받았을 때 어떠셨나요?

친하게 지내는 농부님들이 이전 시즌인 ‘찾아가는 톡톡카페’에 출연하신 것을 봤어요. 진솔한 삶의 철학을 공유하고, 그런 가운데 다양한 이슈와 관심사를 접할 수 있어 인상적이었습니다. 새로운 시즌에는 커피 대신 음식을 출연자에게 대접하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방송을 통해 제주 식재료와 로컬음식의 멋과 맛을 널리 알리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고 단박에 출연을 결정했습니다. 

 

첫 녹화를 앞두고 있는데, 앞으로 어떤 점에 주안점을 두고 요리를 하실지 기대돼요.

음식을 먹는다는 건 참 많은 의미를 내포해요. 누군가와 소통하는 시간이기도 하고. 반가움과 고마움, 그리고 감사와 정성을 나눌 수도 있지요. 서먹한 사이엔 한 끼를 같이 먹는 게 가장 힘든 일이지만, 거꾸로 서먹한 사이를 가장 빨리 가까워지게 하는 힘을 지닌 게 바로 음식이에요. 회차마다 출연하는 분들이 다르기에 어떤 재료로, 어떻게 조리할지 미리 정해두지는 않았지만 여태 해온 것처럼 다양한 삶의 방식을 응원하고 위로하는 요리를 선보일 겁니다. 


'톡톡 다이닝'이란?
제주시소통협력센터가 기획하고 제주MBC와 협력해 TV 방송으로 편성한 토크 프로그램입니다. 도내 지역사회의 관심사와 이슈를 발굴하고 다양한 계층 및 세대 간의 소통과 이해의 문화를 조성하고자 기획되었습니다. 이번 시즌에는 제주 식재료와 로컬음식이 지닌 맛과 멋이 더해져 더욱 풍성한 소통의 장이 펼쳐질 예정입니다. 6월 22일 저녁 9시 제주MBC 첫 방송, 많은 시청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