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뷰

  • HOME
  • 소식알림
  • 현장리뷰
[현장취재] 이 땅의 생명에 안녕! 모두의 정원2021.08.25

나무 사이의 햇살이 길게 고개를 빼기 시작한다. 이끼를 비추던 빛이 그림자에 자리를 내어준다. ‘자연스러운 모두의 정원’ 워크숍의 평온한 3차 현장. 

정원 이야기를 나누는데, 왜 자꾸만 인생을 배우는 기분 드는 걸까. 


자연과 자연 사이, 사람과 자연 사이. 그 꼭 낀 사이를 배워가는 ‘자연스러운 모두의 정원’ 워크숍.
 


사계절의 은혜를 입은 세상에 산다 

“여기 오면 다들 청개구리가 돼요. 햇볕이 쨍쨍할 땐 바람 부는 날을 그리워하고, 여름에 오면 겨울이 보고 싶다 하죠. 자연이 이리 아름답구나, 놀라는 거예요. 정원이 나 혼자의 힐링 장소로만 여기는 시절이 있었어요. 지금은 수분을 돕는 벌이 살 수 없는 환경이 되어가는 상태죠. 야생을 사랑하고 더불어 살아나가면서 나 역시 행복해지는 방법을 푸는 단계에 온 겁니다. 사람과 자연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요.”  

통창으로 베케 정원을 바라보고 김봉찬 대표의 문장들이 새소리처럼 날아든다. 오늘은 자연주의 정원 이론과 더불어 실제 생태 정원인 베케를 답사하는 시간. 무슨 일이든 지식과 이해로부터 탄탄해지기에, 정원에 대한 2회차 이론 수업을 마친 상태였다. 참여한 주민들의 눈빛은 기어이 햇살이 될 요량인가 보다. 영롱했다.  




직접 심어보고 많이 하는 만큼, 여럿이 함께하는 만큼 정원의 에너지도 높아지는 법. 


쉽다. 재밌다. 하고 싶다. 정원 가꾸기의 동기를 힘껏 부여한 김봉찬 대표는 공감의 언어술사다.  


정원을 가꾸려면 내가 알고 있는 걸 좀 내려놔야 해요. 뭔가를 심고 말 거라는 컬렉터의 욕심을 부리는 사람이 있거든요? 그게 아니라 내가 사는 동네, 도시가 아름다워지는 그 너머를 생각할 필요가 있죠. 겨울엔 보통 스산하다고 하잖아요. 겨울이 되면 낙엽수는 ‘가지’라는 선만 남죠. 다시 생각해보세요. 그 가지 사이로 하늘이 들어와 땅과 통하는 세상에 우리가 사는 거예요. 사계절이 있는 나라에 살기에 누릴 수 있는 풍류죠. 대단하지 않아요?” 

정원 문화가 발달한 유럽에선 정원에 털이 보송보송한 곰딸기를 심었다. 복분자도 심었다. 기존 우리네 상식으론 별짓이라 여겼다. 그런데 실제로 보니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이제는 정원 식물의 범주가 달라졌다. 지구의 모든 생명이 정원 식물의 자격을 갖춘 셈이다. 김 대표는 처음부터 전문가처럼 할 필요가 없다고 조언한다. 자연과 소통하면서 천천히, 하나씩 알아가는 탐험가의 길을 열어주었다. 


“웬만하면 씨앗부터 심어보세요. 나무를 사다가 심으면 꼭 이방인 같거든요. 이 아이의 전체 삶, 역사를 내가 모르는 거예요. 그리되면 각 나무의 생리를 알고 관찰하면서 적응하는 법을 깨우칠 수 있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정원이 과연 세상에 존재하는 걸까. 그곳으로 나갈 시간이 되었다. 땡볕은 예고되어 있었으나 얼굴 구기는 주민들이 없었다. 오히려 서둘렀다. 저 정원 속으로 달려가고 싶어서. 


우리 인생처럼 정원에도 균형을 


통창에 걸러진 자연을 눈앞에서 만났다. 식물의 다른 양감을 느끼며 풀 냄새와 더운 공기, 때때로 부는 바람의 선물도.   



“그림 그려주세요!” 김 대표의 그림은 자연의 균형을 다시 보게 하는 지침서 같은 것.  


베케 카페의 문을 열자마자 바로 멈춤이다. 이 정원이 왜 아름다울 수 있을까. 직접 눈으로 받아들이며, ‘균형’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풀어졌다. 자연과 자연 사이, 자연과 인공 사이의 대비가 화두였다. 


“꽃만 많이 심는다고 정원이 예뻐지지 않아요. 이 나무가 있어야 저 나무가 아름다워지는 조화가 필요하죠. 대비감은 무척 중요해요. 여긴 곶자왈의 느낌을 내는데, 고사리나 팜파스 그라스가 데크, 철제와의 대비를 이루면서 자연을 더욱 돋보이게 하죠.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디자인은 점과 선, 면의 균형으로부터 나와요. 정원도 마찬가지죠.”

어미 새를 따라가듯 종종걸음 하던 주민들은 김봉찬 대표와 주거니 받거니 각 식물의 이름과 생태를 나눈다. 보금자리로 마련해주었던 공간을 벗어나 식물 스스로 자리 잡은 아웃사이더에 웃고, 계절에 따라 그저 죽었다고 생각한 식물의 또 다른 존재 가치를 깨닫는다. 목수국을 진정으로 아름답게 하는 건 저 뒤에 버티는 어두운 나무요, 아주 가늘게 부서지는 풀이었다. 풀 하나하나 그늘을 갖고 있어 정원은 더욱 입체감 있게 보였다. 어라, 이거 인생이 아닌가. 빛과 어둠은 공존한다. 서로에 의지해 조화를 이루는 자연처럼 나와 너, 우리가 함께해야 빛을 발휘한다. 듣고 보니, 다르게 보인다.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 건너왔다. 



저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주민들은 자연스러운 강줄기처럼 숲을 천천히 관통했다.  



자연 속에 또 다른 선을 그리며 걷는다. 자연과 중첩되면서 더욱더 아리따워진 사람들.  


나무와 풀, 꽃 모두 각기 삶의 지도를 그리고 있는 베케 정원. 오늘의 현장은 곧 원도심에 문을 열 소통협력공간의 옥상정원을 예고하는 생명을 답사한 일이었다. 한 걸음 떼고 바라보고, 다른 한 걸음을 내디디며 뒤돌아보게 한다. 나무를 심으며 낙엽 치울 걱정부터 해온 그간의 우매함을 반성했다. 돌봄의 미학에 편승했다. 정원은 스스로 작품이 되는 진정한 예술이라는 김 대표의 말을 마음에 담았다. 곧 오는 9월 말에서 10월 초, 실제 옥상정원을 꾸미는 심화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소통협력공간에 조성될 옥상정원은 사람과 자연이 소통하는 동시에, 모두의 인생을 쓰다듬고 두들겨주는 한 편의 응원이 될 것이다. 기대한다. 하늘 가까이 심어진 하나의 씨앗이 제주 곳곳에 퍼지는 희망의 나래를. 



우리 곧 옥상에서 만나요. 정원의 돌봄을 통해 소통할 그날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