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뷰

  • HOME
  • 소식알림
  • 현장리뷰
[현장취재] “내 주변의 한두 명부터라도, 변할 수 있어요.”-창업 준비자 장미화2021.03.25



환경을 위한 행동이 도리어 환경 오염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생각. 알고 나면 왜 미리 인지하지 못했을까 하는 바로 그 틈새. 

환경 관련 창업을 준비 중인 장미화 씨의 머릿속 생각은 공감하는 이들과 더불어 행동으로 이어졌다. 단락도, 강약도 없이 직진했다.

*’일상의 실천’은 누구나 사소한 것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동기를 부여한다. 제주생활공론에 참여한 LAO1 팀의 장미화 팀장이 스스로 풀어나가는 경험의 실타래. 배운다. 할 수 있고, 변할 수 있음을.


 

어느 날, 일상의 충격으로부터

혹시 텀블러 쓰세요? 저는 스무 살 때부터 사용했어요. 일회용 컵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어떤 친환경적인 의지가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커피를 좋아해서 계속 휴대하려다 보니, 대학 신입생 때부터 쭉 이용한 거죠. 편의에 가까웠어요. 이런 일상의 텀블러를 소재로, 제주생활공론에서 팀원과 함께한 좋은 경험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어요.


 

하나의 텀블러를 오래 사용하는 문화를 만들고자 한 ‘One is enough’ 캠페인 스티커.

 

전 사실 제주로 귀향한 사람인데요. 제주에서 중ㆍ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지낸 후 평범하게 직장을 다녔어요. 제가 상경할 당시, 가족 모두 서울로 이사했죠. 그러다가 아버지의 이직 문제로 제주에 내려갈 상황이 되었는데, 고민이 되더라고요. 직장생활에 좀 물리던 시점이었거든요. 일단 내려가 보자, 했어요. 뭔가 전환할 때가 되었다고 직감했거든요. 다시 서울로 돌아갈 가능성은 가지면서요. 돌이켜보니, 10여 년 정도 제주와의 공백이 있었더라고요. 그 사이 두 번 정도 제주를 스쳤을 뿐이죠.

3년 전이었을 거예요. 가족과 함께 한담해변에 갔는데, 너무 놀랐어요. 기억 속의 제주와 달리 바뀌어서? 아니요. 쓰레기가 너무 많아서요. 거기가 카페촌이 되었잖아요. 일회용 컵을 돌담 사이에 쑤셔 넣은 걸 목격했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죠. 제주에 관광객이 많아졌다는 소식만 접했지, 이런 현실은 예상 밖이었거든요. 더불어 필리핀에 쓰레기를 불법 수출한 뉴스도 접하면서 그 심각성을 더욱 깨닫게 되었죠. 그때부터였어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환경과 관련해 창업을 결심하게 된 것은.



사람, 맞는 상대, 그리고 능력자들

저는 원래 팀플에 익숙해요. 경영학을 전공했는데, 유난히 팀플이 많은 학교에 다닌 것도 한몫했죠. 팀 플을 계속하면서 쌓인 노하우가 있다면, ‘역시 사람’이란 점이에요. 훌륭한 팀워크는 나와 잘 맞는 팀원, 내가 잘 맞춰줄 수 있는 상대에게서 나오죠. 제주생활공론의 좋은 점 중 하나는 공론 현장에서 팀을 직접 구성할 수 있다는 거였어요. 보통 이런 프로젝트를 할 땐, 팀을 미리 짜오라고 하거든요. 제주 토박이였어도 연고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제겐 높은 벽인 셈인데, 이건 달랐어요.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자연스럽게 같은 관심사를 가진 이들과 팀을 꾸릴 수 있어 좋았죠.

공론에 참여할 당시, 텀블러로 창업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텀블러 소비량이 많아지면서 또 다른 환경 문제가 생긴다는 점에 주목했죠. 당연한 사실이지만 대부분 인지를 못하고 있어서 이 문제 해결을 창업 아이템으로 풀어보려고 했어요. 공론 첫 날, 이를 화두로 던졌는데요. 당시 관심을 보인 네 분과 캠페인을 수행하는 끝까지 함께했어요. 나만 이런 문제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는 공감대를 시작으로, 해결을 향하는 과정이 즐거움의 연속이었습니다.

  

개인 텀블러에 부착할 수 있는 스티커와 더불어 캠페인의 취지가 일목요연하게 담긴 리플렛.
 
제로 웨이스트 농부시장인 ‘담을장’에서의 캠페인. 시민의 의견을 통해 좀 더 친환경적인 방법을 고민하기도 했다.

  

이건 진심으로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닌데… 함께한 팀원들과 단 한 차례 트러블도 없었어요. 팀플에 불화가 없다는 건 오히려 이상한 거잖아요. 제가 가장 게을렀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들 열정적으로 참여했죠. 아마도 애초에 제가 이 주제를 고집해서 끌고 나갔다기보다 공론하는 와중에 텀블러가 자연스럽게 세부 주제로 잡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아이디어를 구상하면서 아이패드로 예상 결과물을 실제로 구현해낸 팀원들의 능력이 뒷받침되어 착착 일이 진행되었죠.

또 다른 새로운 경험이 있다면, 다른 세대와의 협업이에요. 전 보통 30대 청년들과 함께 활동했는데, 이번 공론엔 40대 팀원 한 분이 계셨어요. 처음엔 걱정했는데, 우려는 시기상조였죠. 경험치 있는 조언과 더불어 때론 맞춰주고 다른 팀원을 밀어주면서 적극적으로 임하는 모습이 참 멋있더라고요. 더불어 이처럼 세대를 초월한 활동이 많아지면 다양한 시각으로 문제에 접근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무시할 수 없는 일상의 나비효과

LAO1 팀의 최종 캠페인에서 쓰인 ‘One is enough’는 창업 준비하면서 만든 슬로건이었어요. 제가 10년 넘게 한 텀블러를 쓰고 있는데, 이게 결국 바꿀 수밖에 없더라고요. 코팅이 벗겨지거나 바닥 부분의 다른 소재가 낡기도 하고요. 저 슬로건은 결국 대를 물려 쓸 수 있는 텀블러를 만들겠다는 의도인데, 특허 출원 이후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연구하고 있어요. 친환경 솔루션을 고민하면서 단가를 맞출 방법을 찾고 있죠. 별개로 초기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은 에코백도 준비하고 있답니다.

가끔 환경 문제에 관심 있다고 말하는 게 조심스러울 때가 있어요. 가령 환경을 생각한다면서 왜 플라스틱 제품을 쓰냐고 하는 사람이 있거든요.너무 유난을 떤다는 식의 반응도 있고요. 저는 누구나 편하게 환경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진짜 부담 없이 말이에요. 제가 생각하는 창업의 고객도 환경 문제에 대해 조예가 깊은 사람이 아니에요. 일상생활에서 아주 사소한 것, 가령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지 않고 분리수거를 잘하는 그런 기본을 중심에 둬요. 기본을 지키는 사람이 많아지도록 서비스나 제품을 제공하는 것이 제 최종 목표죠.

 


요즘 그녀가 읽고 있는, ‘파타고니아’ 브랜드의 창업자 이본 쉬나드의 책. 경영서인 동시에 환경서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목소리를 내고 관심을 두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주에서 중, 고등학생 시절을 보냈으면서도, 사실 제주4·3을 잘 몰랐는데요. 이후 4·3 관련 활동을 하는 지인으로부터 관심을 두기 시작했어요. 마찬가지 아닐까요? 이 활동을 하면서 저 덕분에 텀블러를 사용하게 된 분이 두 명 정도 있거든요. 제 주변의 한두 명이 변하면, 또 그 주변의 한두 명이 변할 수 있는 파급력이 생기지 않을까요? 사소하지만 중요한 변화는 그렇게 시작하는 것 같아요.

 

 

텀블러는 하나면 충분하다. 이런 가치관의 공유는 하나에서 둘, 그리고 둘에서 넷이 될수록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