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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지금, 이 순간을 생각해요. 행복하다고.” - 뜨개질 예술가 라승주2021.02.24

입기엔 멋쩍은, 오래된 스웨터가 있다. 한 올, 한 올 풀어낸다. 조끼든 목도리든 세상에 전혀 다른 형태로 다시 태어날 준비를 한다.

온기 어린 뜨개질은 엄마이자 아내, ‘라승주’란 독립된 개인이 거쳐온 인생과 퍽 닮았다. 이런 부제와 함께. ‘시도해 보고, 아니면 다시.’

*지난 제주생활공론에 참여한 팀장을 중심으로 인생 자서전을 그려나가는 릴레이 독백. 어우렁다우렁 팀의 라승주 팀장이 두 번째 바통을 부드럽게 넘겨받는다.



신(新) 맹모삼천지교의 탄 

한림에 처음 자리 잡으려던 때가 떠올라요. 6년 전 한창 제주 이주 열풍이 불던 시기에 여행했는데요. 학교 위주로 둘러봤어요. 경기 용인에 살던 당시, 아이가 아파 학교에 방문했다가 부실한 급식을 보고 좀 충격을 받았거든요. 천연 잔디가 깔려 있는 곳에서 아이들이 신나게 뛰노는 모습을 상상했죠. 식당 대부분에서 제주산 재료를 사용하는 걸 보고, 친환경 급식일 거라고도 생각했고요. 집으로 돌아와 바로 제주 이사를 계획했어요. 제가 꿈꾸던 그림은 시내가 아닌 외곽에 있었죠. 마침 두 집으로 분리된 개조한 농가주택이 눈에 쏙 들어왔고, 망설임 없이 돌집에 짐을 풀었습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 제주에서 만끽할 수 있는 환경에 반해 있었으니까요.

낭만은 쉽게 깨졌어요. 2월경 바람이 몹시 심한 날이었는데, 그야말로 집안에서 자연을 오롯이 느끼게 되더라고요. 난방을 위해 불을 직접 때는 제주식 온돌(굴목)이 있었는데, 종일 붙어 있어도 방이 따뜻해질 기미가 안 보이는 거예요. 연기는 역류해서 다시 안으로 들어오고요. 이동하는 차의 전조등이 집으로 들어오는 건 예삿일이었어요. 집 앞이 버스 정류장이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우리의 동태를 살피는 점도 퍽 낯설더군요. 아이들은 문을 열면 바로 마당이니 즐거워하는데, 부모의 솔직한 속마음은 이랬습니다. “아 여긴 우리가 살 집이 아닌가 봐.” 5개월쯤 살았나. 이후 한림 내 아파트로 이사했어요. 우리가 직접 체감한 시골과 도시 생활의 차가 컸던 것 같아요.

 


아이들 교육을 위한 이사로 인해 삶이 바뀌었다기보다 그 안에서 스스로 바꾸는 삶을 선택했다.


지금은 노형동에서 살아요. 보통 제주 정착 시 도시에서 외곽으로 가는 수순을 밟으라고 조언하는데, 우린 반대가 된 셈이죠. 이사의 이유는 교육이었어요. 아이들이 고학년이 되는데, 선생님이 시험문제조차 시내권과 다르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국립교육은 평준화되어 있을 거란 제 예상이 틀렸던 거예요. 그즈음 아이들이 공부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생각했고요. 결국, 학생 수가 100명인 학교로부터 선생님 수가 100명인 학교로 가게 되었어요. 잔디도 안 보이고 건물이 하도 커서 층마다 지도가 있더군요. 잘못된 선택인가 싶었는데, 고맙게도 아이들이 잘 적응해서 다니고 있어요. 부모란 존재가 욕심을 버리기가 참 어려운가 봐요.


슬기로운 ‘뜨개생활’ 공방


                      

           어떤 실로, 어떤 패턴을 뜨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온기를 담아내는 뜨개의 매력.


 

‘뜨개생활’ 공방은 마음이 편안해지는 공간의 미학이 숨겨져 있다. 그녀가 느낀 공간의 첫인상처럼.

 

저는 관심 있는 패션 분야 쪽에서 일하다가 아이를 키우면서 코바늘 뜨개를 시작했어요. 참 단순하고도 무대포였죠. 그저 아이에게 예쁜 것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습작처럼 뜨기 시작했거든요. 벌써 15년이나 되었네요. 종종 지인과 함께 뜨면서 독학했어요. 당시엔 지금처럼 유튜브나 센터를 통해 학습할 기회가 적었으니까요.

뜨개의 매력은 일단 스펙트럼이 다양하다는 점이겠죠. 옷, 생활소품 등 만드는 아이템이나 소재에 한계가 없어요. 어떤 사람은 자장면으로 뜨개를 할 정도니까요. 뭐니 뭐니 해도 과정이 참 재밌어요. 요즘 한창 이슈가 되었던 샌더스 장갑 있잖아요. 그게 울을 재생해서 만든 거예요. 딸에게 만들어준 카디건에 보풀과 오염이 있어서 그걸 풀어 지금 제 옷을 뜨는 중이에요. 재생산의 매력도 있는 거죠. 기계로 뚝딱 다른 옷으로 만들어주는 브랜드가 있기도 한데, 낚시꾼에게 왜 굳이 낚시하냐고 묻는 것과 비슷한 이치 같아요. 시간이 걸리고 힘들더라도, 내가 디자인해서 완성하면 만족감이 크니까요. 이런 거듭되는 감정이 지치지 않고 계속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듯해요.

1년 전쯤 여기 ‘뜨개생활’의 공방을 차리면서, 조금은 다른 궤도의 삶을 살게 되었어요. 년세도 나가니, 운영 자구책을 찾아 고군분투하게 되었거든요. 현재 외부에서 공공기관 교육을 하면서, 소규모 클래스로 공방을 운영하고 있어요. 코로나19의 여파로 혼자 할 수 있는 취미에 관심이 높아져 인스타그램(instagram.com/comzira)를 통해 문을 두들기는 분이 많아요. 예쁜 실을 사려는 분도 있고요. 공방은 마당이 있는 주택인데요. 포토존이 많아 좋아요. 자연과 니트의 조합이 그리웠는데, 여기 공방에선 그게 가능하죠.

현재 저의 삶을 정리하자면, 집안일과 공방 일을 조율하는 과정인 듯해요. 아이들도 제법 컸고 남편이 번역가로 재택근무를 하는 터라 부담이 적어 시작이 가능했죠. 하루 6시간 운영 시간을 지키긴 하지만, 저마다 다른 공방 손님의 니즈에 부응하면서 아이디어를 내다보니 마음이 바빠지고 있어요. 분주하지만, 즐거워요.



새로운 실을 보면 자연스레 어떤 아이템을 만들고 싶다는 영감이 떠오르곤 한다.


 

아일랜드에서 파견된 선교사에 의해 시작된 한림수직의 스웨터(왼쪽). 공방으로 만난 인연으로 알게 된 제주 문화다.

 

제주와 우리 사이의 연결고리

여기 공방이 있는 연미 마을이 문화 마을로 지정되면서, 마을 회관에 문화 사업 현수막이 붙은 적이 있는데요. 저도 참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선뜻 문을 못 두들기겠더라고요. 이주민이란 이유로요. 유리창 밑으로 쪽파를 널어 둔다거나 쌀 나눠주기 행사에서 이주민은 소외된다든지 등 한림에 3년간 살면서 겪거나 들은 소문으로 마음이 굳은 것 같아요. 함께하는 문화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 조심스러워졌죠. 제주생활공론의 주제를 선주민과 이주민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 허물기로 잡은 것도 그 때문이에요. 캠페인이 끝나고 나서야 알았어요. 각자 마음의 문제였다는 걸요. 선주민과 이주민 사이에서 벌어진 오해가 불만으로 쌓였던 거예요. 서로 겪은 작은 경험 하나로 고정관념을 갖게 된 거죠.


제가 원래 내성적인 편인데, 제주생활공론 이후로 확 바뀌었어요. 여러 시민과 공론, 캠페인을 진행하고 팀장으로서 일의 마무리까지 해내면서 제가 단단해진 듯합니다. 더불어 뜻밖의 연결고리도 생겼어요. 업사이클링 관련 프로젝트를 하는 팀원을 통해 제주청년센터 활동팀을 대상으로 제가 뜨개 수업을 진행했거든요. 헌 티셔츠를 이용해 휴대폰 파우치를 완성했죠. 아이디어를 발전 시켜 상품화하는 창업 동아리 수업도 하게 되었고요. 학생들이 집중하고 행복해하는 반응을 볼 때마다 저도 덩달아 웃음 짓게 돼요.


이 모든 과정은 제주에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육지에 있었다면 공방도 단순히 돈벌이를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을 거예요. 제주란 환경이 작품의 동기 부여가 돼요. 창작자에게 필요한 자극을 끝없이 주곤 하죠. 오름만 올라가도 바닥에 떨어진 솔방울이나 이파리를 주어오게 하는 것처럼요. 더불어 그림 등 여러 분야의 재주꾼들과 만나면서 협업할 아이디어도 떠오르고요. 전시하고 싶다면, 도서관이나 예술 공간 등 문을 두들길 기회도 많죠.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여건이 생기니까 계속해서 일을 벌이게 되나 봐요. 그래서 이런 생각을 자주하고 있어요. 지금 사는 그 자체가 행복이라고 말이죠.


 

앞날을 준비하되 그에 발목을 잡히지 않는 현명함. 그녀가 나아갈 수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