쓱싹쓱싹, 뚝딱뚝딱 손놀림이 빨라진다. 시끌시끌 서로의 한마디가 울려 퍼진다. 떼고 붙이고 조립하고! 여기는 비밀 작전명 같은 ‘ㅈㅈㅈ 프로젝트’ 현장. 제주의 지속가능한 제조 프로젝트의 뜨거운 열기가 한껏 달아올랐다.
최소한의 원자재와 미니멀한 디자인으로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오픈데스크(Opendesk)의 에디 스툴(Edie Stool)
“망치의 뒷부분을 이용해 다리를 넣어도 됩니다.”
하나의 긴 테이블 위, 마치 추억의 조립식 인형 같은 직사각형 합판이 놓여 있다. 무엇에 쓰는 물건일까? 그 위로 톱을 왔다 갔다 반복하니 툭 빠져나온다. 떼어내 둥근 합판에 다리를 조립해 끼워 넣는다. 한낱 합판이 어느덧 스툴 모양을 갖추게 된 시간은 불과 40여 분. 스툴의 외곽을 부드럽게 하기 위한 샌딩 작업이 이어지고, 각자 스토리를 넣은 드로잉을 위한 아이디어 구상에 한창이다. 열의와 흥미가 집중되어 있다.
“저는 사실 전기·전자를 이용해 제품을 설계하는 엔지니어였어요. 10년 가까이 업종에 종사하다 보니, 오픈 소스 하드웨어와 코드가 나오기 시작해 활용한 바 있죠. 목공 쪽에도 ‘오픈데스크(Opendesk)’ 같은 오픈 소스 플랫폼이 있는지 처음 알았어요. 여러 사람이 CNC(컴퓨터 수치제어) 공작기계를 제한 없이 이용하는 조건이 보장된다면 여러 좋은 프로젝트가 나올 것 같아요.” – 문일현
천영환 대표의 전체적인 디렉션 아래 자유분방하게 참여자의 공작이 이어진다.
전문가와 참여자 간 1:1 피드백이 수시로 이뤄진다. 시간 대비 교육 효과는 2배!
제조하는 재주가 좋아 프로그램 중 하나인, 오픈 소스와 CNC 공작기계를 활용한 메이커 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지역 내 로컬 메이커와 더불어 목공에 관심 있는 이들이 제주 전역으로부터 여기 한라대 자파리창의공작소에 모였다. 연령층은 20대부터 60대까지 다채로우나 배움의 열정은 매한가지. 지난 1차 오픈 소스의 원리와 관련한 이론교육에 이어 합판을 재단하면서 CNC 공작기계의 작동법을 실습한 2차 과정을 거쳤다. 3차는 나만의 스툴을 직접 제작하면서, 몸소 오픈 메이킹을 체험하고 다른 프로젝트로의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마케팅 분야에서 20여 년 일하다가 지금 아이 교육을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제주살이 중이에요. 지도하는 전문가는 물론 여기 목공 전문 참가자로부터 정보를 얻고 많은 영감을 받았어요. 슬슬 무기력해지던 터였는데, 저 같은 처지의 학부모를 위한 워크숍을 해보면 어떨까요? 의자를 통해 나의 색을 표현해보기 같은 주제로요.” – 김세진
김세진 씨가 딸의 요청에 따라 고양이를 그려 나만의 의자를 완성해나가고 있다.
같은 스툴의 다른 판본. 스툴 모양은 같아도, 드로잉 작업으로 각자의 개성을 드러낸다.
이런 김세진 씨의 아이디어가 그저 묻힐 리 없다. 스툴 제작 후 이어진 시민 워크숍 구상 시간이 열렸다. 한마디로 말하면, 학생이었던 참가자가 선생으로 배움을 나누고 전파하는 것. 1회의 워크숍을 기획, 진행한다. 제주시 소통협력센터를 통해 희망자를 모집하거나 각자 커뮤니티를 이용해 모집도 좋다. ‘ㅈㅈㅈ 프로젝트’는 제주 시민이 지역 인프라를 통해 직접 가구를 만드는 제조법 공유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오픈 소스 플랫폼을 매개로 한 메이커끼리의 활발한 소통 역시 지속할 수 있게 한다.
“저도 직접 참여하면서 재밌는 시간을 보냈는데요. 가구 제작이라는 공통 관심사가 있는 분들이 모인 데다가 관련 분야의 종사자도 참여하니, 확실히 집중도가 남달랐어요. 내년엔 이번과 같은 입문반 과정을 포함해 오픈 소스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심화 과정까지 확장 운영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어요. ㅈㅈㅈ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 내 메이커분들 간의 연결과 확장을 지속하도록 할 계획이에요” -이소현 매니저
mini interview
ㅈㅈㅈ 프로젝트의 PM, 천영환 대표(퓨쳐스리빙랩)
생활 속에서 살아있는 연구를 하자는 취지의 퓨쳐스리빙랩. 진행하는 디지털 사회혁신 관련 프로젝트와 맞물려 천영환 대표는 ㅈㅈㅈ 프로젝트의 총괄 디렉터를 맡았다.
현재 오픈 소스로 만들 수 있는 가구가 많은지요?
가구뿐 아니라 누구나 집을 지을 수 있도록 건축을 ‘오픈 소스’한 플랫폼도 있을 정도예요. 어마어마하게 많죠. CNC 공작기계를 활용해 스툴 모양을 자르는데 6분이면 됩니다. 좋은 디지털 도구가 많이 생겨나고 있는데, 그간 시민은 이런 기술에서 배제된 경우가 많았어요. 이젠 직접 지식을 연결하고 다양한 도구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익히면 좋겠죠.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남다른 소감이 있다면요?
육지에서 사용하는 자재와 달라 저도 많이 배웠어요. 그리고 남성 참여자 비율이 높다는 점이 달랐죠. CNC 사용의 장점이 힘을 적게 쓰고도 제조할 수 있는 거거든요. 이를 활용해 30대 후반의 한 여성은 캣 타워를 주문 제작을 하는 1인 기업의 대표로 활동하고도 있죠. 다들 열정적이라 참여자들이 가진 노하우와 새로운 기술의 접점에서 또 다른 시너지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요.
ㅈㅈㅈ 프로젝트의 다음 단계는 기대 하자면요?
지금의 에너지와 네트워크가 이어지도록 하는 게 제주시 소통협력센터의 역할이라 생각해요. 참여한 로컬 메이커와 긴밀히 연결하고, 소통협력공간이 마치 자기 아지트처럼 왕래할 수 있도록 말이죠. 시민이 직접 오픈소스와 지역 인프라를 활용해 가구를 제조하는 문화가 퍼져나갈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