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니까 예상과 달랐다. 애초 고민해 내린 결정이 바뀌었다. 전공한 예술 관련 창업 준비 중인 이승연 씨는 자신의 길을 에둘러 왔다고 했다.
부딪히고 또 부딪히면서. 해봐야 아니까. 그 어떤 인생의 가설보다 경험에 한 수를 둔다. 늘 새롭게.
*제주생활공론에 참여한 팀장이 조곤조곤 들려주는 인생 시리즈는 나와 너, 우리의 이야기다. 오멍가멍 팀의 이승연 팀장은 침착하게 세 번째 자서전을 써 내려 갔다.
어떻게 먹고 살까? 해답은 행동으로
저는 요즘 창업 준비 중이에요. 제주더큰내일센터에서 취업 공부를 하는 게 좋을 듯해 6개월 정도 인턴 생활을 하다가 센터에서 만난 친구와 둘이서 창업 분야로 전환해 ‘오몽’이란 팀을 꾸렸죠. 제주어로 ‘부지런히 움직이다.’란 뜻인데, 어감도 좋아 지었어요. 저는 조각을, 친구는 금속 공예를 전공했는데요. 창업과 관련해 이런저런 활동을 실행하고 있어요. 예술 기반으로 아이들에게 놀이, 체험을 제공하는 아이템으로 구체화하고 있죠.
돌이켜 보건대, 늘 길을 돌아서 간 느낌이에요. 저는 고민을 오래 하기보다는 몸으로 부딪치는 타입이에요. 직접 체험하지 않으면 후회가 남더라고요. 고등학교 때 시각 디자인 전공으로 공부하다가 입시의 벽이 높아 포기하고 일본어 전공으로 방향을 튼 적이 있어요. 미련이 남더라고요. 다시 공부해서 제주대학교 조소학과로 편입했죠. 막상 대학 생활을 하다 보니, 졸업 후 밥벌이가 고민되더군요. 난 순수 예술을 하는 사람인데, 작품은 누가 사주지? 친인척이 사줄까? 그런 현실적인 고민 말이에요. 그러다가 아동미술학원에서 강사 활동을 해보기로 했어요. 음, 심신이 많이 지치더라고요. 그래도 1년은 버텼답니다. 하루 만에 그만두고 싶은 일을 만나도, 일단 맡으면 이 원칙은 지키는 편이에요. 행여나 섣부른 판단이 아니길 바라서요. 당시 강사 일을 그만두면서 아이들과는 영영 이별할 줄 알았는데, 지금 아이와 함께 하는 창업을 준비 중이니, 인생 참 아이러니하죠?
어떤 결핍으로부터 시작
사실 창업 아이템의 시작은 제주를 기반으로, 예술과 접목한 아이 교육이었어요. 그런데 지역성과 교육 성격이란 두 가지 조건을 병행하기가 어렵더라고요. 이때 아이에게 가장 뭘 해주고 싶은지에 중점을 뒀어요. 여기에 제가 제주에서 예술 활동을 하면서 느낀 어떤 ‘결핍’을 떠올렸죠.
한 마디로 틀을 부수고 싶었어요. 예술 교육이라 하면, 유명한 작가 작품 위주로 알려주는 게 보통인데요. 사실 제주에 빛나는 청년 작가가 많거든요. 안타깝게도 자기 작품으로 벌이가 되지 않으면 굿즈를 파는 수순을 밟죠. 이들 작가가 자신의 작업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영감을 주면서, 아이들도 주도적으로 예술 활동을 하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기존에 없던 거, 더 있으면 좋겠다 싶은 요소를 넣어 가는 과정이죠.
결국, 제 수업은 예술이 가진 개방성을 알리는 방식이 되고 있어요. 저는 이야기의 소스만 제공할 뿐, 아이들 스스로 다양한 재료를 가지고 그림으로 표현하는 경험을 누리도록 하는 거죠. 지난 강사 생활 시절 이후로, 마음 한켠에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이 있었어요. 틀에 가두는 것 같아서요. 가령 그림이란 건 크게도, 작게도 그릴 수 있는 건데 크게 그려야 한다는 어떤 방식으로 아이를 끌고 가야 했거든요. 이번엔 그러고 싶지 않아요.
‘애매한’ 그러나 ‘소중한’ 것 붙잡기
제주생활공론이 이런 고민 가운데 삶의 원동력이 된 건 분명해요. 제가 늘 해왔던 건 일상처럼 해내 가야 하는 건데, 이 프로젝트는 스쳐 지나갔던 일상의 문제를 붙잡는 거였거든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했고요. 스스로 실행하기엔 애매한 거라 할까요? 그런데 할 수 있었어요. 이번 계기로 그 가능성을 깨달았고, 지인들끼리 하고 싶은 걸 하겠다는 의지도 생겼죠.
팀장으로 활동한 오멍가멍 팀의 캠페인은 견주 매너를 공유하는 주제로 활동했어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면, 6명의 팀원 중 반려견을 키우는 건 저 혼자였다는 거? 처음엔 아무도 반려견 주제에 관심을 보이지 않아 제가 다른 주제에 흡수되어야 하는 위기(!)에 처했는데요. 발로 뛰어다니면서 적극적으로 어필했죠. 설득의 무기는 제 모토처럼 ‘재밌게, 즐겁게’ 할 수 있다는 점. 어느덧 이 주제를 살릴 수 있는 4명의 정원 수가 채워져 안심하고 있는데, 처음 이 안건을 거절했던 두 분이 팀에 합류했어요. 자신의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있는 팀 같다는 이유로요. 다양한 세대가 모였고, 그만큼 서로의 완급을 조절할 일도 많았죠. 처음이었어요. 보통 팀플레이를 하더라도 제 선에서 일을 처리하는 경향이 강한데, 일을 분할해서 협업하는 노하우를 배워가는 과정을 거쳤죠.
매일 습관처럼 전 영감을 주는 예술 작가의 작업을 보곤 해요. 작품만이 아니라 그분의 사상을 간파할 수 있는 인터뷰도 살피면서요. 전 계속해서 새로운 걸 만들어가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어요. 현실에 안주하고 남들과 똑같아지고 싶지 않아요. 계속 다른 걸 생각해내려고 노력하죠. 아마도 가난할 것 같아요. 부자가 되긴 글렀어요(하하). 돈도 잘 벌고 싶은데… 즐겁게 하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죠?